문화평론가 시미즈 마사시가 본 <겨울연가>의 매력

일본인이 잃은 순수, 이 드라마에 있었다

2004년의 문화계를 대표하는 키워드는 한류였다. 그러나 엄밀히 말해 피부로 실감할 수 있는 한류는 한국의 문화상품 일반을 대상으로 한 것이 아니었다.

2004년의 한류는 정확히 말해 일본에서 일어난 <겨울연가> 붐이라고 좁게 지칭해야 옳다. 욘사마 열풍 또한 <겨울연가> 없이는 결코 일어날 수 없는 일이었다.

일본 위성방송에서 시작해 공중파인 에서 재방송을 거듭하고 있지만 여전히 인기를 끌고 있는 <겨울연가>. 일본인들은 과연 이 드라마에서 무엇을 보고 감동하는 것일까? 일본의 문화평론가 시미즈 마사시가 쓴 <겨울연가> 비평은 이 궁금증을 해결할 실마리를 제공해준다.

시미즈 마사시는 현재 일본대학 예술학부 문예과와 대학원 예술학 연구과 교수로 <츠게요시 하루를 읽다> <아베 사다를 읽다> <비트 다케시 종언> <시미즈 마사시가 읽는 우라사와 나오키·몬스터> <겐지 동화의 심연> <도스토예프스키의 암호> <미야자와 겐지와 도스토예프스키> <도스토예프스키 죄와 벌의 세계> <도스토예프스키 백치의 세계> <도스토예프스키 악령의 세계> <미야자와 겐지의 신비적인 세계> <미야자와 겐지의 우주> <겐지 동화극장> <이마무라 쇼헤이를 읽다> <츠게요시 하루를 읽어라> <시가 나오야와 도스토예프스키> <미야자키 하야오 세계로의 초대> 등 문학·영화·만화를 넘나드는 다양한 저서를 내놓은 인물이다.


이번에 한국에서 한달 동안 유학을 하기에 앞서 특별히 어떤 준비를 하진 않았지만 한국에 간다면 꼭 <겨울연가>를 봐두어야 한다는 친구가 있었다. <겨울연가>가 일본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얻고 있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나는 본래 유행에는 둔감하기 때문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래도 몇번이나 권유를 받는 바람에 그렇게까지 권한다면 첫 번째 이야기만이라도 볼까 하는 가벼운 기분으로 DVD판 1부를 학교에서 가지고 집에 왔다. 밤중에 가족 모두가 잠든 다음에 혼자서 텔레비전 앞에 앉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1부에 수록된 세 번째 이야기까지 계속해서 봐버렸다. 다음날 나머지 6부를 한꺼번에 보았다.

이틀간 20편을 보고 나서 분명히 이 드라마는 도중에 그만둘 수 없도록 구성돼 있음을 알았다. 달콤하고 슬픈 테마송을 시작으로 서정적인 영상과 아름다운 남녀의 조화, 드라마가 끝나면 다음 회의 예고, 다음 편을 보면 테마송 뒤에 반드시 전편의 줄거리가 소개된다. 그러니까 어디에서부터 보더라도 괜찮은 것이다.

이번에 나는 <겨울연가> 1편을 통해 이 드라마의 특수성을 논해보고자 한다.



‘버스’를 쫓는 여자아이-체제에 대해 반항하지 않는 젊은이들



히로인인 여자아이 정유진은 고등학교 2학년. 항상 통학 버스를 뒤쫓는 지각 상습범. 히로인의 첫인상은 ‘달리고 있는 여자아이’이다. 고등학교 2학년이라면 열여섯이나 열일곱이다.

유진 역의 최지우는 당시 25살. 고등학교 2학년으로 보기에는 약간 나이 들어 보인다는 인상은 감추기 어렵다. 이 정유진이 사귀고 있는 이가 소꿉친구 김상혁이다. 상혁은 반장인 우등생으로 전형적인 모범생 청년이다.

정유진은 언제나 버스를 놓칠 것 같다. 하지만 결국 시간에 맞춰 도착한다. 유진은 지각 상습범이지만 학교를 퇴학당하거나 하진 않는다. 유진은 학교가 싫지만은 않으며 특별히 누군가에게 불만을 품고서 반항적인 태도를 하거나 하지도 않는다.

유진은 일반적으로 어디에나 있는 듯한 여고생으로 보인다. 너무나 보통스러워서 드라마 주인공답지 않은 타입으로도 보인다. 왜 이런 보통의 평범한 여자아이가 주인공이 되었을까. 첫 번째 이유는 유진을 연기하는 여우 최지우의 매력이 상당히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일본에서 ‘며느리 삼고 싶은’ 여배우 넘버원인 히가시와 어딘가 닮은 최지우의 얼굴은 일본인이 좋아하는 요소를 충분히 갖추고 있다.

유진은 ‘버스’라는 체제(질서, 모럴, 혹은 유교적 정신)에 반역하는 존재는 아니다. 유진은 언제나 열심히 ‘버스’를 놓치지 않도록 달리고 있다. 그녀의 달리는 모습에 반항의 흔적이나 항의, 빈정거림은 없다. 유진은 ‘버스’를 놓치지 않고 뒤쫓는다. 그러나 일단 ‘버스’를 타면 이번에는 안심하고 잠들어버린다.

여기에도 ‘버스’가 상징하는 체제에 대한 반역의 조짐은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유진은 체제 안에 있을 때야말로 안심하고 있는 듯하다. 유진은 지각에 대해 주의를 주는 교사에 대해서도 전혀 반항적인 태도를 취하지 않는다. 유진뿐만이 아니라 이 드라마에 등장하는 젊은이들은 체제에 대해서 반항적인 자세를 보이지 않는다. 이같은 커다란 특징이 한결같이 나타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유진은 질리지도 않고 ‘버스’를 뒤쫓으면서 지각을 반복하는 걸까. 여기에는 의외로 많은 관객이 간과하지 못하고 있는 유진의 성격에 대한 ‘비밀’이 잠재해 있는지도 모른다. 유진은 열심히 달리지 않으면 ‘버스’(체제)를 놓치고 겉돌거나 주변인이 되어버리는 성격을 가진 것은 아닐까?


상혁은 유진의 소꿉친구이긴 하나 우등생이며 ‘체제’의 상징이다.

유진은 상혁과 함께 있으면 안심하기는 하지만 운명적인 사람은 아니다.

유진은 상혁을 보고 가슴이 두근거리는 일이 한번도 없다. 유진은 열심히 달려서 상혁을 뒤쫓지 않으면 자연적으로 멀어져버린다는 것을 알고 있다.

어느 날 버스 안에서 잠들어버린 유진 곁에 한 청년이 앉아 있다. 이 청년이 강준상이다. 과학고등학교에서 온 전학생. 수학과 음악 천재이며 말수가 적은 쿨한 청년이다. 확실히 만화책에 등장하는 백마 탄 왕자처럼 핸섬하다.

전학생이란 이유만으로도 어쩐지 매력적인 존재로 보이지만 배용준이 연기하는 스타일이 멋진 강준상은 왠지 모르게 그림자가 진 수재이기 때문에 클래스 여자아이들을 사로잡을 정도로 매력을 가지고 있다.

유진은 준상과 만나기 위해 매일 ‘버스’에 늦은 게 아닌가 하고 생각할 정도이다. 만약 유진이 지각을 하지 않는 모범스런 학생이었다면 준상과 버스 안에서 마주칠 일은 없었을 것이다. 수학과 음악 천재인 준상도 ‘버스’를 놓칠 정도로 지각을 하는 청년이며 그 점에서 그 또한 필사적으로 노력하지 않으면 ‘체제’로부터 떨어져나갈 듯한 경향을 지닌 청년이었다.




현대인이 잃어버린 순수한 사랑의 힘을 보여주다






유진과 준상에게 전통적인 인습, 습관, 질서를 초월하려는 의지는 없다. 그들은 체제에 대해 특별히 찬미도 하지 않으며 반항도 하지 않는다. 그들이 유일하게 흥미를 보이는 것은 상대방의 기분이다. 유진은 준상을 좋아하며 준상도 유진을 좋아한다. 그러나 두 사람은 자신의 기분을 스트레이트로 전달하지 않는다.

지각을 하고 학교 벽을 넘는 장면, 두 사람이 나란히 메타세콰이어 길을 걷는 등 이런 소박한 장면을 통해 두 사람은 순수한 사랑을 키워간다. 어쩐지 부끄러운 기분조차 들게 하는 순수한 사랑이긴 하지만 그런 부분을 철저히 보여주기 때문에 관객을 납득시키는 힘이 있다.

한국과 북한의 긴장관계는 계속되고 있지만 냉랭했던 정치적 계절은 끝나버린 듯하다. 정치적 차원에서의 ‘정의’를 이제는 아무도 믿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현대인은 종교적 차원에서의 ‘정의’도 믿지 않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숭고한 이상을 실현하고자 했던 인류는 결국 우매한 전쟁을 반복해왔다. 현대인은 정보사회 속에서 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다양한 뉴스를 손쉽게 얻을 수 있다. 수많은 것들이 상대적으로 작용하면서 절대적인 진실이나 정의의 개념이 무너져버렸다. 대체 무엇을 믿고 살아야 좋은가.

미야자키 하야오는 <천공의 성 라퓨타>나 만화판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에서 ‘사랑’에 대한 환상을 철저히 파괴해 보여주었다. 미야자키 팬들은 이런 점에 대해서 대부분 발견하지 못하고 있다. <천공의 성 라퓨타>의 시타와 파즈가 세계 파괴의 주문을 둘이서 소리내어 외쳤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시타와 파즈 두 사람의 ‘사랑’은 ‘환상’일 뿐이었다. 즉 현대인은 ‘사랑’조차 믿지 못하게 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겨울연가>의 순수한 사랑에 많은 관객이 열중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사랑조차 환상임을 인식한 상태에서 열중하고 있는 것일까. 사람은 어떤 ‘환상’이 없이는 살아갈 수 없기 때문일까. <겨울연가>의 순애보적인 사랑은 ‘과거’를 상기하는 것이며 결코 ‘현재’를 무대로 한 것은 아니다. <겨울연가>를 본 많은 사람들은 향수를 느낀다.

자신에게도 유진과 준상과 같은 ‘순애보적인 사랑’이 있었다는 걸 기억하고 자신의 과거 체험을 오버랩함으로써 감동의 눈물을 흘리는 것이다. 일본의 많은 주부들이 한국으로 여행을 가는 것도 ‘현재’의 사랑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다. 그녀들은 그것이 ‘환상’이며 ‘과거’에 있었던 일이며 애타게 원한다고 해도 결코 손에 넣을 수 없는 ‘사랑’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알고 있으면서 하다못해 준상 역의 배용준과 만나고 싶다고 원하는 것이다. 얼마나 슬프고 유니크한 일인가.


이상을 꿈꾸는 일은 그만두자. 그러나 절망할 필요도 없다. 눈앞에 존재하는 한 사람의 타인을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겨울연가>를 보고 있으면 유진과 준상도 ‘이상’과 ‘절망’과는 무관한 존재로 보인다.

그들은 사회에 어떤 불평불만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런 일은 불가능하겠지만 그들은 드라마에서 그런 사회적 불만을 나타내고 있지 않다. 유진의 아버지는 이미 돌아가셨고 그녀는 엄마의 손에서 자랐다. 준상 또한 아버지의 존재가 불명확하며 피아니스트인 엄마에 의해 자랐다. 즉 그들은 똑같이 아버지가 부재 중인 가정에서 성장한 것이다. 따라서 그들의 최대 문제는 부재 중인 아버지의 존재를 찾는 것이다.

‘아버지’란 단순히 가족의 일원으로서의 존재만은 아니다. ‘아버지’는 역시 인생의 지침을 제시할 수 있는 지도자적 역할을 담당한 존재를 은유하기도 한다. 현대는 ‘정의’와 ‘진리’를 체험할 수 있는 ‘아버지’의 존재를 잃어버렸다. 일찍이 존재했었으나 어느 순간 행방불명이 되어버린 ‘아버지’를 찾는 일. 그것이 유진과 준상에게 부여된 사명이라고 한다면 이 드라마는 나름대로 깊이있는 작품이 될 것이다. 그러나 전편을 보고 나서 이 드라마에 그런 장대하고 심오한 테마가 숨어 있다는 인상은 받지 못했다.



유진, 준상, 상혁, 이 세 사람이 주인공인 드라마에서 양친이 건재한 것은 상혁뿐이다. 상혁의 아버지는 수학을 가르치는 대학교수 김진우이며 준상이 자신을 찾아왔을 때 이 청년이 자신과 어떤 관계를 가진 존재라는 것을 직감한다. 관객이 드라마를 보면서 김진우가 사실은 준상의 아버지가 아닐까 하고 생각하도록 이야기는 진행된다. 이런 암시는 멜로드라마의 상투적인 전략이다.

유진의 아버지 정현수는 사실은 준상의 어머니 강미희와도 관계가 있으며 준상은 정현수의 아이라는 것이 드라마의 마지막에 밝혀진다. 즉 유진과 준상은 아버지가 같은 형제가 되는 것이다. 한자로 ‘형제’(兄弟)라고 쓰면 형과 아우라는 뜻이 된다. 그러니까 유진과 준상은 어머니는 다르지만 한 가족인 것이다. 이 두 사람이 ‘부재 중인 아버지’에 대한 비밀을 풀기 위해 순애보적인 멜로드라마의 소용돌이에 던져졌다고 해도 좋다.

정현수는 어떤 남자였을까. 유진의 어머니와 준상의 어머니를 동시에 사랑한 이 남자는 결국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은 채 병사한다. 그의 자식(유진과 준상)은 ‘어머니’에게 맡겨진다. ‘아버지’가 부재중일 때 아이들은 ‘어머니’에게 맡겨지는 것이다. ‘어머니’에게 맡겨진 유진은 언제나 ‘버스’에 늦지 않으려고 달리며 지각 상습범이 된다. 유진은 정면으로 ‘어머니’에게 반항하는 아이는 아니다. 준상은 부재 중인 아버지의 비밀을 풀기 위해 방황하고 있다. 어머니 강미희는 아들에게 아버지의 정체를 감추기만 한다. 준상은 어머니를 신뢰하지 못하고 반항을 계속한다. 두 사람의 관계는 언제나 트러블이 생긴다. 두 사람 모두 고독하기 때문이다.


은근한 서정성의 유진, 직선적인 채린에게 KO승






준상은 두뇌가 명석하며 쿨하고 약간 삐딱한 점이 매력으로 보인다. 준상의 매력에 처음으로 사로잡히는 사람이 오채린(박솔미)이다. 채린은 유진과 달리 자기 주장이 강하다.

자신이 생각한 것은 솔직히 말하며 그런 점 때문에 상대방이 상처받는다는 것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는다. 채린은 자신의 미모에 자신이 있으며 어떤 남자라도 자신의 매력에 반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준상이 과학고등학교에서 전학을 왔을 때 일방적으로 ‘찍었다’라고 선언한다. 이 시점에서 채린은 유진과 준상의 비밀스런 ‘관계’를 알지 못한다. 알고 있다고 해도 채린과 같은 여성은 그런 점은 모르는 척하고 무시해버리는 달인인 것이다.

유진과 준상은 여러 번 데이트를 하는 동안에 서로에게 끌리게 된다. 관객이라면 누구나 두 사람의 운명적인 만남을 확신하게 된다. 그러나 두 사람의 순수한 사랑만으로는 드라마가 성립되지 않는다. 두 사람의 사랑과 인연에 제삼자의 개입이 생기고 나서야 드라마는 가슴이 두근대고 아슬아슬하게 전개를 개시한다.

이 드라마에서 제삼자는 ‘악역’이 아니다. 유진의 소꿉친구이며 반장인 상혁이 유진과 준상 사이에서 부드럽게 개입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앞에서 지적했듯이 상혁은 ‘체제’ 자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상혁은 양친이나 친구를 소중히 여기는 멋진 청년이다. 그야말로 유교적 가족주의의 계승자이다. 학교에서도 반장을 하는 우등생이며 그 어떤 결점도 없어 보이는 점이 결점인 듯한 청년이다.

상혁은 유진을 좋아하고 있다. 유진도 또한 상혁을 좋아한다. 그러나 이 호감은 사랑이나 연애 감정과는 다르다. 유진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은 준상이다.

유진은 자신의 마음을 스트레이트로 표현하지 않는다. 그 점이 서정성을 만들어서 두 사람의 관계성에 밀도를 높이게 한다.

격정적인 채린은 준상에게 자신의 마음을 그때그때 바로 전하지만, 그녀의 지나치고 일방적인 오만한 접근은 준상에게 반감을 사기만 한다. 채린은 오나 엑스(○, ×)식의 감정으로 상대방에게 접근한다.

채린은 상대를 지배하려고 하며 그것에 실패하면 화를 낸다. 유진은 채린과는 대조적으로 좋게 표현한다면 유연성이 풍부하고 나쁘게 말하면 우유부단한 태도에 내숭 타입이다. 채린에게는 질투와 증오 감정이 따라다니고 유진에게는 울림이 있는 서정성이 떠돌고 있다.

이 드라마에서 하나의 볼 만한 장면으로는 채린의 격정적인 성격과 유진의 유연한 성격의 뒤얽힘이다.

<겨울연가>에서 격정적인 채린은 유연한 유진에게 승리를 얻을 수가 없었다. 채린은 준상은 물론 10년 뒤에 나타난 이민형(배용준)까지도 유진에게 빼앗겨버린다.

채린이야말로 비극적인 여성이라고 할 수 있겠다. 만약 채린이 유진의 ‘유연성’과 ‘우유부단한 성격’의 기만을 날카롭게 벗겨낼 만큼의 비평과 현자의 검을 갖추었다면 이 드라마의 주역이 되었을 것이다.




글: 시미즈 마사시

번역 이은주·편집 박초로미·디자인 김순겸

댓글 '1'

도하

2005.02.10 19:20:01

좋은 논문(?) 감사합니다. 정말 세심하게 분석한 글이군요.
재미있게 보았습니다^^
확실히 채린이야말로 겨울연가에서 가장 비극적인 인물이죠. 준상이는 그래도 마지막에 유진이를 얻을수 있었지만 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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