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상이 없는 곳에서 .. 유진이의 10년[5]

조회 수 3249 2003.06.28 11:44:30
소리샘
준상이가 없는 곳에서.. (5)


작성일: 2002/07/13 02:41
작성자: 녹차향(ippnii76)


보충수업도 오늘이 마지막이다.
이제 짧은 방학이 지나고 나면.. 고3이 된다.
길지 않았던 보충수업기간.. 하지만 내겐.. 어느때보다 긴 시간이었다.
교문을 들어서면서 부터.. 다시 교문을 나올때까지..
내 맘은 지옥 같았다.
어느 곳 하나.. 아무렇지않게 보이는 곳이 없었다.
교실에선.. 조금만 고개를 돌리면.. 그 자리엔 언제나 준상이가 앉아있었고..
소각장에서도.. 준상이는 낙엽을 태우고 있었다.
강당에선 준상이가 피아노를 치고 있었고..
방송실 건물 밖 구석엔.. 벽에 기대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는 준상이가 있었다.

난.. 매일 방학중엔 방송을 하지 않아 비어있는 방송실에 갔었다.
방송실에 가면 언제나 처음..을 들으며 앉아있었다.
금방이라도.. 준상이가 문을 열고 들어설 것만 같아.. 마음을 졸이면서..
혼자 있으면.. 준상이가 찾아올 것만 같았다.
다른 아이들은 몰라도.. 나 만은.. 나한테만은 찾아올것 같았다.
그러나.. 헛된 바램이라는 걸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래걸리지 않는다.
음악이 그치고.. 방송실이 숨이 막히도록 고요해지면..
그제서야.. 그것이 얼마나 바보같은 기대인지.. 깨닫게 된다.
준상이를 다시는 볼 수 없다는 사실이.. 아프게 가슴을 찌른다.
난.. 힘없이 방송실을 나왔다.
방송실 계단을 내려오면서.. 몇번이나 다짐을 했다.
이런.. 바보같은 짓.. 이제 그만해..
준상이는 이제 세상에 없다는 걸.. 넌 왜 자꾸 잊어버리는 거니..
준상인 죽었어.. 이젠.. 다신 너한테 오지 않아..
기다리지도 말고.. 준상이 쫒아다는 짓.. 이제 제발 그만하자..

하지만.. 그것도 잠시 뿐이다.
다시 학교에 나오면.. 홀린 듯 방송실을 찾게 된다.
오늘이.. 마지막이야.. 다신 이러지 않을꺼야..
정말 오늘이 지나면.. 다시는 준상이가 오지 않을꺼란 절박함까지 들었다.
쿵쿵거리는 가슴을 애써 누르며.. 준상이를 기다렸다.
누군가 걸어오는 발자국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손잡이가 돌아가고.. 문이 열린다.
난.. 순간 숨이 멎는 것 같았다.. 준상이니...?
그러나.. 문을 연 사람은.. 준상이가 아닌.. 상혁이었다.

너.. 여기서 뭐하는 거니?
어..? 어.. 저기..
난 도둑질을 하려다 들킨 사람처럼.. 심장이 쿵쾅거린다.
어.. 그냥.. 음악.. 어.. 그래.. 음악 듣고 싶어서..
돌아가고 있던 LP를 서둘러 꺼냈다.
부산스럽게 주위를 정리하는 나를.. 상혁인 차갑게 쏘아본다.
상혁아.. 가.. 가자..
문을 막 열려던 나를.. 상혁이가 어깨를 잡아 돌린다.
꼼짝없이 잡혀.. 상혁이와 마주섰다.
상혁이의 얼굴이.. 무섭게 일그러진다.
너.. 지금 뭐하는 거니.. 말해봐.. 너 여기서 누구 기다린거야?
준상이 기다렸니?
입술이 바르르 떨린다.. 상..혁아..
너 요즘.. 니 모습이 어떤지 알기나 해?!
너.. 미쳤니..? 응..?
상혁이의 눈에 눈물이 고인다..
난.. 아무말도 할 수가 없다..
너 요즘.. 니가 어떻게 보이는지 아니..? 넋이 나간 사람같애..
애들하고 말도 안하고.. 수업시간에도 멍하니 준상이 자리만 쳐다보고..
쉬는 시간마다.. 학교 여기저기 미친듯이 돌아다니고..
아님.. 구석에서 쭈그려 앉아있기나 하고..
너.. 매일 방송실 오는것도 알아..
매일 여기서 준상이 기다렸니..? 응..?
방송실 나올때면.. 반쯤 넋나간 사람처럼 그러잖아. 너.. 아니니..?
눈물이 울컥.. 쏟아진다.
상혁이가 본 내 모습이란.. 정말.. 듣고 있기가 힘들다..
유진아.. 제발 그러지마.. 정신 좀 차려..!
준상인 죽었어.. 죽었다구!
상혁이의 손을 뿌리치고.. 바닥에 털썩 주저 앉았다.
알아.. 나도 안다구..
준상이 죽은거.. 나도 알아..
근데.. 상혁아.. 나 어떡하면 좋으니.. 나.. 어떡해..?
믿어지지가 않아..
머리에선 준상이가 죽은 걸.. 알고 있는데..
가슴은.. 가슴에선 도저히.. 받아들여지지가 않아..
아직도 어디선가 나타날 것만 같애.. 꼭.. 나 찾아올 것 같애.. 상혁아.
내가 안기다리면.. 그냥 가버릴 것 같다구..
나도.. 힘들어 죽겠어..
나도 내 이런 모습.. 보고 있기.. 너무 힘들어..
그냥 나도.. 사라졌으면 좋겠어..
아무것도 느낄 수 없고.. 아무것도 생각하지 못했으면 좋겠어..
상혁아... 나.. 너무 힘들어...
힘들어 죽겠어.. 상혁아..
그동안 꾹꾹 눌러왔던 울움이.. 터져나온다.

한참 그렇게 울고 나니.. 답답해 미칠 것 같던 가슴이.. 조금은 후련해진다.
문에 기대 멍하니.. 앉아있었다..
이제 아무 생각도 나지 않는다. 머릿속까지.. 텅.. 비어버린 것 같다.
가자.. 애들도 다 갔을꺼야..
상혁이를 올려다 보았다.
상혁이의 눈가가 빨갛다..
몸을 일으켰다.

가방을 챙겨 교문을 나설때까지.. 우린 서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버스가 왔다.
먼저 가.. 난.. 좀 들를데가 있어..
상혁인 나를 버스에 밀어넣고.. 돌아선다.
멀어지는 상혁이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상혁이의 어깨가.. 무거워보인다.

아까.. 방송실에서 상혁이가 했던 말들이 떠오른다..
상혁아.. 너.. 계속 날 따라다닌거니..?
이러는 날.. 말리지도 못하고.. 그렇게 아프게 바라보고만 있었구나..
난.. 니 존재를 그렇게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난.. 내 마음만 들여다보고 있었는데...
그런데 넌.. 언제나 내 곁에 있었구나..
날 걱정하며.. 무슨 일이 일어날까봐.. 가슴을 졸이면서..
미안해.. 상혁아..
그리고.. 고마워..
하지만 상혁아.. 난.. 너에게 아무것도 해줄수 없어.
니가 내민 손조차.. 지금은 잡을 수 없어..
내 마음엔.. 틈이 없어.. 상혁아..
준상이만으로도 꽉차서.. 더이상 아무것도 들어올 틈이 없어..
하지만.. 기다려줄래..?
니 손을 잡아도.. 준상이한테 미안하지 않고..
준상이를 떠올리지 않고도.. 널 바라볼 수 있을 때..
그때까지.. 기다려줄 수 있니..?

상혁아.. 미안해..

*************************************

겨울연가 사람들  녹차향글방펌









댓글 '3'

영아

2003.06.28 20:12:26

소리샘님...
여러가지 일로 바쁘실텐데....오늘도 좋은 음악과 유진이의 연가 ...
감사합니다....행복한 주일 보내시고...건강하세요

스타팬

2003.06.28 23:22:23

짐~ 생각해보면
유진의 10년은 유진의 성격이었기에 가능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자신때문에 죽었다는 죄의식의 굴레 때문에~
쉽게 잊지 못하는 완전주의 성격 때문에~
생활의 힘듦과 그리고 자존심의 보루 때문에~
녹차향님은 정말 대단하신 분이네요~ 완전 유진이가 되어 글을 쓰셨으니까요
녹차향님이 앞으로 혹~ 소설 출간하시면 꼭~ 알려주세요
소리샘님 감사합니다

코스

2003.06.28 23:52:06

아니...전 이글을 읽으면서 내가 이 장면을
왜?? 기억을 못하는걸까 했답니다.
둔치...코스 ㅎㅎㅎㅎ
정말...유진이가 그랬을것 같네요.
녹차향님....유진이의 마음을 대변해준 부분들...
마치 그 장면이 실제로 그려지듯 착각이~~
오늘도 여김없이 올려주신 소리샘님의 정성에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녹차향님의 감성적으로 풀어내신 글들에 매번 감동하며 읽고있습니다.
두분 모두다...늘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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