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들레 홀씨되어 떠나다 --- 회상(1)

조회 수 3196 2003.06.24 10:34:30
단군아부지
할머니는 김소녀(金少女)였습니다.
태어나서 이름을 받을 때부터 돌아가시는 그 순간까지 소녀였습니다.

어린 시절 할머니곁에 누워서 옛날 이야기해 달라고 많이도 졸랐습니다.
할머니 팔을 베고 스르르 잠이 들 때까지 할머니의 이야기는
계속 되었습니다.

할머니는 나를 꼬옥 껴안고 엉덩이를 두드려 주셨습니다. 때로는 고추가
얼마나 컷는지 보자면서 만져 보시곤 하셨습니다.

할머니의 삶은 "질곡(桎梏) 의 삶" 그 자체였습니다.
삼종지도 (주: 어렸을 때는 아버지에 따르고, 출가해서는 지아비에 따르고, 늙어서는 아들에 따른다는 여자로서의 덕목) 의 굴레 속에서 일찍 홀로 되었고,

긴 곰방대에 기나긴 한숨과 여자의 한을 실어 피어 오르던 하얀 연기...
그것이 할머니의 인생이었습니다.

할머니는 소작을 붙여 먹고 살았습니다.
추수하는 날이면 즐거운 날이 아니었습니다.
주인에게 소작료를 내고 나면 홀테 (주: 발로 밟는 수동식 탈곡기의 전라도
사투리) 밑에는 탈곡되지 않은 쭉정이만 얼마정도 남아 있었습니다.

할머니는 이 쭉정이로 세 아들과 함께 다음 해 보리고개를 나야 합니다.
무밥, 고구마밥, 조밥, 콩밥은 그래도 약간의 쌀이 곁들어져 있어서
그나마 풍요로운 식단이었습니다.

이렇게 살아 오신 할머니는 저를 지극히도 아끼셨습니다.
닭의 뱃속에서 나와 온기가 채 가시지 않은 달걀 하나를 들고
할머니는 이리 저리 저를 찾아 다니셨습니다.

이 아들, 저 아들이 조금씩 주신 돈을 접고 또 접어서, 실로 수십번 휘감아서
주머니 깊숙히 간직해 온 돈을 저의 손에 꼬옥 쥐어 주시곤 하셨습니다.

할머니의 고리짝에는 아들들이 사다 준 내의와 같은 옷들이 돌아가시는
그 날까지 그대로 보관되어 있었습니다.

할머니의 흰고무신은 언제나 두컬레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습니다.
하나는 새것이었고, 또 하나는 낡은 헌 고무신이었습니다.

할머니는 만물이 혹한에 떨며 잔뜩 움츠렸던 몸을 펴고 기지개를
켤 무렵 내 곁을 떠나가셨습니다.

끊어질듯 이어지고, 깊은 한숨쉬는가 싶더니, 다시 끊어지고
단말마의 고통을 안고 할머니는 그렇게 힘들게 저승길을 가셨습니다.

할머니의 손을 잡아도, 볼을 비벼도, 우리의 울음을 뒤로 하고 할머니는
당신 갈길을 그렇게 가셨습니다.

문턱 위에 바가지를 깨고, 꽃상여 타고 먼길을 그렇게 가셨습니다.
이제 가면 언제 오나... 어와 디여 어와 디여...

  

댓글 '1'

코스

2003.06.24 21:38:15

언제나..내 편이였던..할머니.....
봄이면..이제 막 돋아난 어린쑥의 향기를 맡노라면 생각나는 할머니..
할머니가 끊여주던 쑥국이 먹기 싫다며 할머니와 많은 실갱이를 했었거든요.
언제나 내편이셨던 할머니를 까맣듯이 잊어버리고 살다가
두부찌개의 구수한 냄새가 날때면 그분에 대한 그리움이 밀려 들곤 한답니다.
단군아부지님...오늘은 님에글이...
푸른 쑥의 향기처럼 그때의 추억시간으로 향기를 더해주네요.
좋은 글 감사드리구요.
남은 시간 즐거운 시간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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