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진의 겨울연가.. (2)
작성일: 2002/09/27 03:03
작성자: 녹차향(ippnii76)
마지막 퍼즐 한 조각.. 그리고 그가 문을 열고 들어섰다.
어렸을 적 읽었던 동화책에서처럼..
비밀의 열쇠를 꽂자.. 마법처럼 왕자님이 나타나는 것처럼..
그래.. 정말.. 마법 같았지..
내가 가진 한 조각으로 퍼즐이 완성되자.. 그가 나타났으니까..
그와 마주선 몇 초간의 시간동안..
그가.. 채린이 친구..? 라고 말하기 전까지.. 아주 잠깐동안..
나를 바라보는 그의 무표정한 얼굴에서.. 난.. 준상이를 보았다.
[기억.. 해요.. ]
기억해요.. 기억해요..
그의 물음에 난 그렇게 대답했다.
기억한다고..
준상아.. 난.. 널 기억해.. 기억하고 있어.. 이렇게..
그의 가벼운 농담과 일 얘기를 들으며.. 난 속으로 바라고 또 바랬다.
모든 게 준상이.. 너의 장난이었다고..
그냥.. 날 놀래켜주려고.. 채린이와 짜고 장난 친 거라고..
날 잊지 않았다고.. 사실은.. 날 찾아 온 거라고..
그렇게 말해주기를.. 애타게 기다렸다.
[유진아.. ]
유진아.. 날 부르는 그의 목소리에 심장이 덜컹 내려앉는 것 같았다.
흠칫.. 그를 쳐다보았지만.. 그는 날 보고 있지 않았다.
[유진아.. 유진아.. 어감이 좋은데요? 약혼자가 부르기 좋겠어요.
그때 봤었죠? 유진씨 약혼자.. ]
순간 긴장해서 뻣뻣해졌던 손가락이 맥없이 풀리고..
손이 떨려 제대로 잔을 잡을 수조차 없었다.
참.. 바보 같지.. 그는.. 준상이가 아닌데..
마음 속으로 몇 번이나 그는 준상이가 아니라고 되 뇌였다.
그 말 뒤에.. 하지만.. 하지만.. 이 끝없이 따라붙었다.
하지만.. 너무 똑같은 걸.. 너무 똑같애..
그런데 어떻게 준상이가 아니란 말인지.. 나더러 그걸 어떻게 믿으란 말인지..
그가 옆에 다가와 앉고.. 서류를 읽는 그를 나도 모르게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바로 내 눈앞에.. 그가.. 아니 준상이가 있다..
안경너머 보이는 가느다란 속 쌍꺼풀.. 코.. 살짝 입술을 깨무는 모습까지..
준상아..
니가 살아있다면.. 지금 이 모습 그대로 일 테지..?
하나도 변하지 않았어..
안경.. 안경 벗은 얼굴을 한번만 볼 수 있다면..
[멀쩡하게 생겼죠..? 눈은 두 개.. 코는 하나.. 입도 하나..
훗.. 원래 그렇게 사람 얼굴 빤히 쳐다봐요? ]
그제서야 내가 그에게 실례를 범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사람.. 얼마나 날 이상하게 생각했을까..
여자가 자기 얼굴을 넋을 잃고 쳐다봤으니..
손을 뻗어 그의 얼굴을 만지지 않은 것이 천만 다행이었다.
정말이지.. 그 자리를 참고 있기가 너무 힘들었다.
미친 듯이 뛰던 심장의 두근거림이 차츰 가라앉자..
한 켠에 꽁꽁 묶어놓았던 그리움과 슬픔이 봇물처럼 터져 나왔다..
그것이.. 가슴에 꽉 차고.. 목구멍까지 치밀어 올랐다.
투둑.. 손등으로 눈물이 떨어지고..
[죄송합니다.. ]
난 무작정 뛰쳐나왔다.
버스에 올라타고..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그냥 멍하니 앉아있었다.
머릿속이 하얗다..
준상이와 그의 모습이 번갈아 지나가고..
유진아..
준상이의 얼굴에 그의 목소리가 겹친다.
얼마나 버스에 앉아 있었는지..
버스는 종점에 다 달았다가 다시 왔던 길을 돌아 나오고 있었다.
서서히.. 정신이 들기 시작했다.
내가 아까 마르시안에서 어떻게 나왔는지.. 내가 무슨 실수를 한 건지..
프리젠테이션.. 후.. 그래 그걸 하러 갔었지..
그런데 아무 설명도 없이.. 그냥 뛰쳐나왔으니..
언니한텐 뭐라고 해야할지.. 또 그 사람한텐 어떻게 이해를 구해야 하는지..
내 자신이 한심해서 견딜 수 없었다.
나 때문에 마르시안에서 계약을 못하겠다고 하면 어떡하나..
아니.. 그쪽에서 이해해 준다해도.. 앞으로 난 어떡해야하나..
어떻게 그를 계속 볼 수 있겠어..
난.. 자신 없어..
그를 준상이가 아닌 다른 사람으로 볼.. 자신이 없는데..
이제.. 나.. 어떡하면 좋지..?
깜깜해진 뒤에야 버스에서 내렸다.
집으로 가려면 한참을 더 가야했다. 지하철을 타고.. 다시 버스를 타고..
집으로 걸어가는 길에 정아 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언니.. 나야.. ]
[야. 너 어떻게 된거야? 너 프리젠테이션도 안하고 그냥 나왔다며? 무슨 일이야? ]
[미안해. 언니.. 그럴.. 일이 좀 있었어..
마르시안에선 뭐래? 화.. 많이 냈지..? 계약은.. 저기.. ]
[에휴.. 그건 걱정마. 그쪽에서 다시 날짜 잡겠대. 그런데 도대체 무슨 일이야? ]
[후.. 미안해.. 내일.. 내일 얘기해. 언니... ]
[그래.. 그러자 그럼. 많이 피곤해 보이는데 일단 푹 쉬어. ]
[응.. 정말.. 미안해 언니.. ]
그 사람.. 화가 많이 나진 않았던 모양이다.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야..
집 앞에 상혁이가 기다리고 있었다.
따뜻하게 위로해주는 상혁이.. 그저 일이 잘 안됐을꺼라고만 생각하고 있다..
처음 그때.. 사실대로 털어놨어야 했다.
마르시안의 이사가.. 이민형씨라고..
그 사람을 봤을 때.. 준상이가 떠올라 너무 힘들었다고..
힘들었지만.. 그래도.. 그래도.. 좋았다고..
눈물이 날 만큼.. 슬프고.. 가슴이 아팠지만.. 그래도 그 사람을 볼 수 있어서 좋았다고..
마치.. 준상이가 살아 돌아온 것 같았다고..
내가.. 준상일 아직도 잊지 못하고.. 사랑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고..
이런 내가.. 널 어떻게 사랑할 수 있을까..
준상이와 닮은 사람을 본 것만으로도.. 이렇게 흔들리는데.. 어떻게 널 사랑할 수 있을까..
사실대로.. 털어놨어야 했다..
상혁이에게 상처가 될까봐.. 상혁일 위한다는 마음에.. 내 마음을 숨겨선 안 되는 거였다.
한번의 거짓말은.. 또 다른 거짓말을 부르고..
나중에 그 사실을 상혁이가 알게 됐을 때 받을 상처는 배가 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나에 대한 불신과 실망으로 서로에게 상처를 주는 일은 덜 했을텐데..
그러면.. 안되는 거였는데..
작성일: 2002/09/27 03:03
작성자: 녹차향(ippnii76)
마지막 퍼즐 한 조각.. 그리고 그가 문을 열고 들어섰다.
어렸을 적 읽었던 동화책에서처럼..
비밀의 열쇠를 꽂자.. 마법처럼 왕자님이 나타나는 것처럼..
그래.. 정말.. 마법 같았지..
내가 가진 한 조각으로 퍼즐이 완성되자.. 그가 나타났으니까..
그와 마주선 몇 초간의 시간동안..
그가.. 채린이 친구..? 라고 말하기 전까지.. 아주 잠깐동안..
나를 바라보는 그의 무표정한 얼굴에서.. 난.. 준상이를 보았다.
[기억.. 해요.. ]
기억해요.. 기억해요..
그의 물음에 난 그렇게 대답했다.
기억한다고..
준상아.. 난.. 널 기억해.. 기억하고 있어.. 이렇게..
그의 가벼운 농담과 일 얘기를 들으며.. 난 속으로 바라고 또 바랬다.
모든 게 준상이.. 너의 장난이었다고..
그냥.. 날 놀래켜주려고.. 채린이와 짜고 장난 친 거라고..
날 잊지 않았다고.. 사실은.. 날 찾아 온 거라고..
그렇게 말해주기를.. 애타게 기다렸다.
[유진아.. ]
유진아.. 날 부르는 그의 목소리에 심장이 덜컹 내려앉는 것 같았다.
흠칫.. 그를 쳐다보았지만.. 그는 날 보고 있지 않았다.
[유진아.. 유진아.. 어감이 좋은데요? 약혼자가 부르기 좋겠어요.
그때 봤었죠? 유진씨 약혼자.. ]
순간 긴장해서 뻣뻣해졌던 손가락이 맥없이 풀리고..
손이 떨려 제대로 잔을 잡을 수조차 없었다.
참.. 바보 같지.. 그는.. 준상이가 아닌데..
마음 속으로 몇 번이나 그는 준상이가 아니라고 되 뇌였다.
그 말 뒤에.. 하지만.. 하지만.. 이 끝없이 따라붙었다.
하지만.. 너무 똑같은 걸.. 너무 똑같애..
그런데 어떻게 준상이가 아니란 말인지.. 나더러 그걸 어떻게 믿으란 말인지..
그가 옆에 다가와 앉고.. 서류를 읽는 그를 나도 모르게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바로 내 눈앞에.. 그가.. 아니 준상이가 있다..
안경너머 보이는 가느다란 속 쌍꺼풀.. 코.. 살짝 입술을 깨무는 모습까지..
준상아..
니가 살아있다면.. 지금 이 모습 그대로 일 테지..?
하나도 변하지 않았어..
안경.. 안경 벗은 얼굴을 한번만 볼 수 있다면..
[멀쩡하게 생겼죠..? 눈은 두 개.. 코는 하나.. 입도 하나..
훗.. 원래 그렇게 사람 얼굴 빤히 쳐다봐요? ]
그제서야 내가 그에게 실례를 범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사람.. 얼마나 날 이상하게 생각했을까..
여자가 자기 얼굴을 넋을 잃고 쳐다봤으니..
손을 뻗어 그의 얼굴을 만지지 않은 것이 천만 다행이었다.
정말이지.. 그 자리를 참고 있기가 너무 힘들었다.
미친 듯이 뛰던 심장의 두근거림이 차츰 가라앉자..
한 켠에 꽁꽁 묶어놓았던 그리움과 슬픔이 봇물처럼 터져 나왔다..
그것이.. 가슴에 꽉 차고.. 목구멍까지 치밀어 올랐다.
투둑.. 손등으로 눈물이 떨어지고..
[죄송합니다.. ]
난 무작정 뛰쳐나왔다.
버스에 올라타고..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그냥 멍하니 앉아있었다.
머릿속이 하얗다..
준상이와 그의 모습이 번갈아 지나가고..
유진아..
준상이의 얼굴에 그의 목소리가 겹친다.
얼마나 버스에 앉아 있었는지..
버스는 종점에 다 달았다가 다시 왔던 길을 돌아 나오고 있었다.
서서히.. 정신이 들기 시작했다.
내가 아까 마르시안에서 어떻게 나왔는지.. 내가 무슨 실수를 한 건지..
프리젠테이션.. 후.. 그래 그걸 하러 갔었지..
그런데 아무 설명도 없이.. 그냥 뛰쳐나왔으니..
언니한텐 뭐라고 해야할지.. 또 그 사람한텐 어떻게 이해를 구해야 하는지..
내 자신이 한심해서 견딜 수 없었다.
나 때문에 마르시안에서 계약을 못하겠다고 하면 어떡하나..
아니.. 그쪽에서 이해해 준다해도.. 앞으로 난 어떡해야하나..
어떻게 그를 계속 볼 수 있겠어..
난.. 자신 없어..
그를 준상이가 아닌 다른 사람으로 볼.. 자신이 없는데..
이제.. 나.. 어떡하면 좋지..?
깜깜해진 뒤에야 버스에서 내렸다.
집으로 가려면 한참을 더 가야했다. 지하철을 타고.. 다시 버스를 타고..
집으로 걸어가는 길에 정아 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언니.. 나야.. ]
[야. 너 어떻게 된거야? 너 프리젠테이션도 안하고 그냥 나왔다며? 무슨 일이야? ]
[미안해. 언니.. 그럴.. 일이 좀 있었어..
마르시안에선 뭐래? 화.. 많이 냈지..? 계약은.. 저기.. ]
[에휴.. 그건 걱정마. 그쪽에서 다시 날짜 잡겠대. 그런데 도대체 무슨 일이야? ]
[후.. 미안해.. 내일.. 내일 얘기해. 언니... ]
[그래.. 그러자 그럼. 많이 피곤해 보이는데 일단 푹 쉬어. ]
[응.. 정말.. 미안해 언니.. ]
그 사람.. 화가 많이 나진 않았던 모양이다.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야..
집 앞에 상혁이가 기다리고 있었다.
따뜻하게 위로해주는 상혁이.. 그저 일이 잘 안됐을꺼라고만 생각하고 있다..
처음 그때.. 사실대로 털어놨어야 했다.
마르시안의 이사가.. 이민형씨라고..
그 사람을 봤을 때.. 준상이가 떠올라 너무 힘들었다고..
힘들었지만.. 그래도.. 그래도.. 좋았다고..
눈물이 날 만큼.. 슬프고.. 가슴이 아팠지만.. 그래도 그 사람을 볼 수 있어서 좋았다고..
마치.. 준상이가 살아 돌아온 것 같았다고..
내가.. 준상일 아직도 잊지 못하고.. 사랑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고..
이런 내가.. 널 어떻게 사랑할 수 있을까..
준상이와 닮은 사람을 본 것만으로도.. 이렇게 흔들리는데.. 어떻게 널 사랑할 수 있을까..
사실대로.. 털어놨어야 했다..
상혁이에게 상처가 될까봐.. 상혁일 위한다는 마음에.. 내 마음을 숨겨선 안 되는 거였다.
한번의 거짓말은.. 또 다른 거짓말을 부르고..
나중에 그 사실을 상혁이가 알게 됐을 때 받을 상처는 배가 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나에 대한 불신과 실망으로 서로에게 상처를 주는 일은 덜 했을텐데..
그러면.. 안되는 거였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