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이 오랫만에 뜬 것 같습니다.
너무 내려 쪼이는 폭염이 싫어서 한줄기 소나기가 간절했던 것이 언제인냥
비의 `비'자만 보아도 싫어지는 사람의 마음이 간사한 것 같군요.
이 기사는 8월5일자 동아일보 기사입니다.
저의 아들녀석 병원데리고 다니다 보니 글올릴 시간이 없어서 이제 올립니다.
"먼로 그대는 영원한 연인 "
한 시대의 `문화코드'가 된 여배우
위의 수식어로 타이틀을 장식한 기사를 보고서
문득 제가 좋아했던 `오드리 햅번'과는 다른 인생을 살았지만
40년이 지난 지금끼지도 그녀를 기억하고 추억하는 열기를 보면서 요약하여 올립니다.
마릴린 먼로(1926-1962) 는 8월5일 36세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작금의 5일은 그녀가 76세로 40주기가 되는 셈이지요.
우리가 알고 있는 그녀에 대한 일반적인 시각으로는
성장과정속에서 생모의 복잡한 사생활로 인해 생부가 누구인지 모르고
`노마 진 베이커'이라는 본명으로 출생신고 되었고,
9세에 고아원에 보내져서 16세에 고아원에 돌아가지 않기위해 결혼을 하고
4년후 이혼으로 세번의 결혼과 세번의 이혼을 한 여배우.
그녀의 사후 20년 동안 매일 아침 무덤에 꽃다발을 그녀의 무덤에 보내며
그녀를 추모했던 야구선수 `조 디지마오' 와 극작가 `아서 밀러'와,
지금까지 그녀의 죽음이 약물과다 복용으로 미스터리로 남아있고 ,
그 중심에 케네디가의 두형제와의 삼각관계의 염문이 원인이 되어
살해 됬다는 `음모론'을 믿고 있습니다.
`돔 폐리뇽'을 즐겨마시고 잠옷대신 `샤넬 5' 향수만을 입고 잔다는 그녀...
하지만 그녀는 지금 사회 문화적으로 재 평가를 의미를 부여받고 있습니다.
당대의 `섹스 심벌' 이자 한 시대의 `문화 코드'인 마릴린 먼로
그녀는 (1) TV에 빼앗긴 관객을 되찾게 해준 여배우로.
1950년대는 TV가 보급되면서 할리우드가 위기를 맞던시기.
이에 선전성과 폭력성의 수위가 높아지고 검열제도가 완화되고 ,
마릴린 먼로의 성적매력은 남성팬들을 영화관으로 끌어 들였던 것이다.
(2) 죽어서 신화가 된 배우
먼로는 이름부터 이미지까지 할리우드의 스튜디오가 만들어낸 `기획상품',
`MM'의 먼로의 이니셜은 뽀뽀를 두번하는 입모양을 따서 만든 것이다.
어두웠던 과거와 현란한 생활까지도 상품으로 포장하였다.
50년대 미국사회는 성(性)에 대한 재해석이 한창이었고,
성을 순수하고 즐기는 마켓팅 전략이 먼로를 대중의 스타로 만들었다.
(3) 대중 문화의 아이콘으로
대중문화의 소비문화를 바탕으로하는 팝아트의 인물 중의 하나로,
소비가 미덕인 시대의 위선과 욕망을 가장 잘 표현한 소재의 하나로 ,
그녀는 평가 되고 있다.
지금도 그녀는 그녀의 이름 사용료로 연간 200만 달러(약 24억)의 수입을 올리고 있습니다.
`그녀는 여전히 살아있는 것이다.'
미군장병 위문공연으로 한국에 대한 특별한 추억을 갖고 있는그녀...
`나는 늙어서 성형수술을 하지 않겠다. 세월이 만들어낼 나의 얼굴에
당당할 수 있는 용기를 갖고 싶다' 고 말했던 그녀....
정말 마릴린 먼로는 영원한 연인 , 문화 코드로 조명되고 있씀을 실감케 하는군요.
나의 사랑 지우 !
너와는 정반대의 이미지를 갖고 있는 마릴린 먼로에 대한 기사를 몇자 올렸다.
지금 막바지 촬영에 혼신을 다하고 있겠지?
좋은 일기로 촬영에 지장이 없었으면 한다.
열심히 한 보람의 열매를 얻게 될거다. 건강유의 하길 바라며...
주님의 가호가 항상 함께 하기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