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수국꽃이 보고 싶습니다...

조회 수 3207 2002.06.24 21:42:01
토미
     동네사람들의 밤나락 지기는 가을철이면 꼭 서너 집씩 했다.
     일손이 없는 과부집이나 늙은 내외가 사는 집을 골라 그냥 닭죽도
     없이 해주곤 했지만 닭죽을 끓이는 집과 함께 덤으로 후다닥 해치웠다.
     그런 사람들일수록 나락이 많을 리 없었기 때문이었다.
     밤나락 지기가 끝나고 나락 비늘이 둥그렇게 마무리가 되어 날개로
     덮고 꼭대기에 유지베기까지 씌우고 죽을 먹고 나서 술들이
     거나해지면 굿들 할 때도 있다. 그때 굿은 정식 풍물판이 아니라
     그냥 꽹과리, 징 장구만 가지고 노래 부르고 춤추고 놀았다.
     나락 비늘이 잘되면 그 둘레를 빙글빙글 돌면서 풍물을 울렸다.

     아, 달빛 쏟아지던 산길 논길을 가던 지게꾼들이여,
     찰랑찰랑 가뿐가뿐 걷던 짐 진 사람들이여,
     달빛처럼 둥그렇게 잘도 척척 쌓아 올려져 걷던 나락 비늘이여,
     그 맛있던 닭죽이여, 닭죽을 배불리 먹고 나서 바라보던
     그 둥근 달이여, 달빛이여, 달빛 아래 마을이여, 사람들이여!

  김용택 시인의 산문집 <섬진강 이야기 2>中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도시에서 자라 도시에서 사는 어설픈 도시인이기에... 시골생활은 그저 책으로만, 매스컴으로만 느껴왔기에... 아는 이들이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고향이야기를 할 때는 그저 신기하듯 바라보고 듣기만 할 뿐입니다. 서로 말없이 도와주고, 허물없이 어울리고, 산에서 냇가에서 나무하며, 물고기도 잡으며, 일과 휴식이 공존하는.... 인간미 물씬 풍기는 생활을 동경해보기도 합니다.
  물론 김용택 시인의 글의 생활도 어릴 때 자라던 고향을 얘기한 것이기에 지금은 많이 변했겠지만...
책을 읽는 순간 순간 저도 마음속으로 그 섬진강 변에서 물고기도 구경하며, 산에서 나무들과도 마주 해봅니다.

  김용택 시인의 <섬진강 이야기>속에는 읽으면서 입가에 미소를 머금게 하는 그 무엇인가가 있습니다.

  아버님은 또 소를 잘 키우셨다. 소도 아무 소나 키우지 않으셨다. 순창 장이나 임실 장에 나가셔서 가장 좋은 소를 제일 비싼 값을 주고 사오셨다. 사람들은 그럴 때마다 '규팔이 돈ㅈ+ㅣ랄 소ㅈ+ㅣ랄'한다고 비웃었지만 아버님은 코방귀도 뀌지 않으셨다. 아버님은 아무리 멀더라도 가장 좋은 장소에서 가장 좋은 풀을 베어다가 여름이고 겨울이고 가리지 않고 쇠죽을 끓여 주었다.

  어찌나 소를 귀하게 여기셨던지 소 몸에는 쇠똥 하나 묻히지 않으셨다. 아버님에게 끌려온 소들은 몇 달이 안 가서 금방 살이 붙고 윤기가 자르르 흘렀다. 50여 마리쯤 되는 동네 강변 소 중에서 가장 '빛나는' 소는 틀림없이 우리 집 소였다. 아버님을 소를 사람과 똑같이 키웠다.

  --- page. 29

  어느 날 학교 가는 길에 나는 목이 말랐다. 목이 말라 샘이 있는 곳으로 부산하게 가고있는데 꼭 누군가 내 뒤에서 자꾸 부르는 것 같고 옷깃을 잡는 것도 같았다. 나는 되돌아갔다. 되돌아가 가만히 그 물소리 나는 나뭇잎을 헤쳤다. 아 거기 보라색 산수국꽃이 피어 있었고 나는 그 꽃에 반해 버리고 말았다 아, 니가 날 불렀구나 나를 불렀어 나는 가만히 산수국꽃을 보다가 작은 돌 위에서 떨어지는 물을 손으로 받아먹었다 그리고 늘 거기만 지나가면 꼭 누군가 나를 가만히 부르는 것 같았다. 그 예쁜 산수국꽃, 지금도 눈에 선한 그 산수국꽃.

  --- page. 104

  낮에 일본에서 온 손님과 식사를 하러 간 친구 어머니의 식당에서 성당에 다니는 친구 어머니에게서 얻어 온 예화집例話集이 있습니다.
  원래는 친구에게 보내주려고 가지고 계신 거였는데... 책 좋아하는 저와 책만 보면 졸아버리는 제 친구를 보면서 고민하시다가 저를 주시는 거라고 합니다.
  참고로 제 친구는 지금 프랑스에 가 있습니다.
  제 친구의 꿈이 '소믈리에sommelier'이거든요.
  그리고 보니 제 주위에 '소믈리에sommelier'가 꿈인 친구가 두 명 있습니다.
  한 녀석은 지금 일본에, 또 한 녀석은 프랑스에... 나중에 좋은 와인 고르려고 고민하지 않아도 될 거 같습니다.

     잡초의 의미

  어느 날 한 농부가 허리를 구부려 뜰의 잡초를 뽑고 있었다. 얼굴에서는 큰 땀방울이 뚝뚝 떨어졌다.
  "이 몹쓸 잡초만 없다면 이따위 고생은 안 해도 되고 밭도 깨끗할 텐데 神은 어째서 이런 잡초를 만들어 냈을까?"
  농부가 중얼거렸다.
  그러자 뜰의 한쪽 구석에 뽑혀진 잡초가 농부에게 말했다.
  "당신은 우리가 얼마나 고마운 존재인지 모르는군요. 우리가 진흙땅 속으로 뿌리를 뻗음으로서 흙을 갈아주고 있는데 만약 우리를 뽑아낸다면 아마 흙을 갈 수가 없을 거예요. 또 비가 내릴 땐 진흙이 흘러내리지 않도록 막아주고 건조할 때는 바람이나 모래 먼지가 일어나는 것을 방지하기도 하지요. 이렇게 우리들은 당신의 밭을 잘 지켜 왔어요. 만일 우리들이 없었다면 당신이 꽃을 기르려고 해도 비가 흙을 씻어 내리고 바람이 흙을 날려서 당신을 더 곤란하게 했을 거예요. 그러니 꽃이 아름답게 피어 있을 때 우리들의 공로도 좀 생각해 주었으면 해요!"
  농부는 이 말을 듣고 자세를 똑바로 하여 얼굴의 땀을 씻더니 가볍게 웃었다.
  그는 그 후로 잡초를 소홀히 하지 않았다.

     세상에서 가장 튼튼한 줄

  중동지역, 시리아의 한 강변으로 목동이 수백 마리의 양떼를 몰고 오고 있었다.
  목동은 그 많은 양떼를 몰고 강을 건너려는 것 같았다.
  물을 싫어하는 양들을 몰고 강을 건넌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기에 여행 중이던 아들이 이를 이상히 여겨 어머니에게 물었다.
  "어머니, 저 목동은 많은 양떼를 몰고 어떻게 강을 건너려는 거지요?"
  "글쎄, 하지만 얘야, 저 목동의 얼굴은 아무 걱정 없이 평온하지 않니."
  아들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그리고는 목동에게로 다가가 조용히 물었다.
  "아니, 이 많은 양떼를 몰고 어떻게 강을 건너려고 합니까?"
  "하하하, 그야 간단하지요. 세상의 이치만 알면 말이에요."
  아들은 더욱 이해할 수 없었다.
  그때 강가에선 양떼들이 '매애매애'하며 우왕좌왕하고 있었다.
  물을 본 어린 양들 또한 놀란 눈으로 어미 양의 옆에 바싹 붙어 섰다.
  그때였다. 목동은 겁먹은 눈으로 서 있는 많은 양들 가운데서 귀여운 어린 양 한 마리를 번쩍 들어올리더니 자신의 어깨에 둘러메는 것이었다.
  "아니, 어쩌려고 저러지요?"
  "곧 알게 될 테니 두고보자꾸나."
  그제야 어머니는 목동이 양떼를 거느리고 강물을 건너는 방법을 알았다는 듯 부드러운 표정을 지었다.
  어린 양을 둘러멘 목동은 성큼성큼 강으로 걸어 들어갔다.
  강폭은 넓었지만 물은 그다지 깊지 않았다.
  순간 어린 양을 빼앗긴 어미 양이 몇 번인가 '매애매애'하고 울더니 강물 속으로 풍덩 뛰어드는 것이었다.
  그것이 신호가 되어 수백 마리의 양들이 일제히 물 속으로 뛰어들어 강을 건너는 것이 아닌가.
  그 목동은 세상에서 가장 강하고 튼튼한 줄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던 것이다.

  친구 어머님이 주신 예화집例話集에 나오는 이야기 중에서 두 가지를 적어보았습니다.
  의미는 제가 따로 적지 않더라도 아시리라 믿습니다.

     재미있는 인디언

     사막 한가운데서 영화를 찍고 있을 때 인디언이 찾아와 말했다.
     "내일 비!" 다음날 정말 비가 내렸다. 일주일 뒤 인디언이 다시 찾아와 말했다.
     "내일 태풍!" 다음날 정말 태풍이 몰려와 촬영을 하지 못했다.
     그러자 감독은 그에게 돈을 주고 계속 날씨를 알려 달라고 했는데,
     어느 날부터 그가 나타나지 않았다.
     감독이 조감독에게 내일 중요한 촬영이 있으니 날씨를 알아오라고 했다.
     조감독이 인디언을 찾아가 날씨를 묻자 그가 대답했다. "몰라, 라디오 고장났어."

  비가 오는 저녁에 집으로 오는 좌석버스에서 이 이야기가 생각이 났습니다.
  밤바람이 차갑습니다.
  모두 감기 조심하셨으면 합니다.
  그럼... 쉬세요.


댓글 '2'

sunny지우

2002.06.24 22:37:59

잡초의 고마움에 대해서 , 우리의 삶속에 잡초 같은 어려움때문에 고통도 있지만 풍성한 삶의 비밀을 알아간다는 생각이 문뜩 듭니다. 토미님 동생분 건강은 어떠신가요? 님도 감기조심하세요.

세실

2002.06.25 07:25:31

세상에 의미없는 존재는 없군요...깨닫지못할 때는 예언이며 기적인 것이...오늘도 축배를 들 수 있기를.. corea team fighting ~~you win ag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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