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종일 춤을 추어도...

조회 수 3384 2002.06.12 19:50:11
토미
     꿀벌들은 춤으로 말을 한다.
     이른 아침 꿀을 찾아 이곳저곳을 다니다
     돌아온 정찰벌이 추는 춤을 읽으면
     꿀 있는 곳을 알게 된다.
     그런데 종종 엄청나게 좋은 꿀의 출처를
     발견한 정찰벌은 몇 시간 또는
     심하면 하루 종일 계속해서 춤을 춘다.

  최재천의 <동물과 인간 이야기, 생명이 있는 것은 다 아름답다>中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신바람이 나면 사람도 하루 종일 춤을 출 수 있습니다. 바깥 조건에 따라 춤을 추는 꿀벌과는 달리, 사람은 자기 안의 에너지만으로도 춤출 수 있는 게 차이입니다. 진짜 사랑에 빠지거나 자기 일에 몰두하면, 꿀맛 같은 재미에 기쁨이 계속 솟구쳐, 하루 종일 춤을 춰도 지칠 줄을 모릅니다.
  저의 삶도 하루 종일 춤을 추어도 지칠 줄 모르는 삶이 되었으면 합니다.
  물론 제 글을 읽는 여러분도 그랬으면 합니다.

  <생명이 있는 것은 다 아름답다>中에 보면 이런 구절이 나옵니다.

     원앙은 과연 잉꼬부부인가

  실제로 한 둥지에서 태어난 어린 원앙들의 유전자를 분석해보면 상당수가 아비가 서로 다른 것을 알 수 있다. 내가 남의 아내를 넘볼 수 있으면 남도 그럴 수 있다는 엄연한 삶의 진리는 새 둥지 속에서도 이렇듯 나타난다. 평생 한 지아비만을 섬기며 행복한 가정을 꾸려갈 아름다운 꿈을 꾸는 새 신부에게는 그다지 어울리는 선물이 아니다. 그래서 나는 가끔 옛날 우리 할아버지들께서 겉으로는 충실한 남편인 양 행동하면서 일단 혼례를 올린 뒤엔 늘 다른 여인들을 넘보는 수컷 원앙의 속성을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사뭇 짓궂은 생각을 떠올릴 때가 있다.

  이웃 나라 일본에는 '비너스의 꽃바구니(Venus's flower basket)'라 부르는 바다 해면동물을 말려 결혼 선물로 주는 풍습이 있다. 재미있게도 이 해면동물의 몸 속에는 새우가 들어와 산다. 그런데 이 새우는 어려서는 비너스의 꽃바구니 몸에 나 있는 격자 무늬의 구멍으로 드나들 수 있지만 몇 번의 탈피를 거쳐 몸집이 커지면 더 이상 밖으로 나가지 못하고 그 안에서 평생을 살게 된다. 그래서 비너스의 꽃바구니를 우리말로는 한자어를 빌어 '해로동혈(偕老同穴)'이라 부르기도 한다.

  물론 새우는 비너스의 꽃바구니가 만들어준 아름다운 유리 격자 안에서 다른 포식동물들의 위협으로부터 보호를 받으며 편안하게 살지만, 보는 관점에 따라서는 가정이라는 창살 속에 갇혀 무료한 삶을 보내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이와 같은 결혼 풍습만 보더라도 왜 오늘날 일본 여성들의 사회참여도나 여권이 어떤 면으로는 우리나라 여성들에 비해 뒤지는지 조금은 엿볼 수 있을 것 같다.

  제가 일본에 있는 짧은 기간동안 느낀 것을... 저자는 '비너스의 꽃바구니(Venus's flower basket)'라 부르는 바다 해면동물에 빗대어 설명하는 것을 보고... 저자는 어쩔 수 없는 '동물학자'구나 하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참 그리고 위의 문장에 나오는 '해로동혈(偕老同穴)'이라는 말의 유래는 이와 같습니다.

  대거(大車)에 다음과 같은 시(詩)가 나옵니다.

     살아서는 집이 다르나, 죽어서는 무덤을 같이 하리라(穀則異室死則同穴)
     나를 못 믿겠다 이를진데, 밝은 해를 두고 맹세하리라(謂子不信有如교日)

  중국 춘추시대 초기에 초楚나라는 식息나라의 군주를 포로로 삼고 그의 부인을 초왕楚王의 처로 삼은 일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식息나라의 군주의 부인은 포로가 된 남편을 만나 楚王의 처가 되느니 다른 세상에서 당신을 기다리겠다는 내용의 시를 전해주고 자살했다고 합니다. 이후 남편도 그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자살을 했는데, 해로동혈偕老同穴이란 해로偕老(함께 늙는 것)를 하지 못할 바에는 동혈同穴(함께 죽는 것)을 하겠다는 데서 유래된 말이라고 합니다.

  요 근래에 읽은 <상하이에서 부치는 편지 : 나의 아들 부총傅聰에게>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 책은 중국의 번역문학가였던 부뢰傅雷가 아들 부총傅聰에게 보낸 100여통의 편지를 묶은 것입니다. 원제가 <부뢰가서(傅雷家書)>이니, '부뢰 집안의 편지글' 정도로 해석하면 될 이 책의 부제는... '중국인들의 가슴을 적신 한 아버지의 목소리'라고 달려 있습니다.

  부뢰가 아들에게 편지를 쓰기 시작한 것은 아들이 피아노 공부를 위해 상해로, 폴란드로, 영국으로 떠돌면서였습니다. 그는 아들에게 편지를 통해 전인적인 훈련을 견뎌내어 높고 깊게 우뚝 서는 인간이 될 것을 누차 당부하고 있습니다.

  때로는 편지봉투에 우표 붙이는 법까지 참견할 정도로 세세한 데까지 가르치려 들 때도 있습니다. 허나 그것이 흠으로 보이지 않을 정도로 이 아버지의 편지는 자상하고, 애정이 그득하고, 무엇보다도 취할 것이 많습니다.

  절도 있는 생활과 규율을 엄수하는 (피아노) 훈련, 조심스럽게 사람을 대하는 몸가짐, 늘 신중하고 냉정하게 사리를 판단하여 결정을 내릴 것 등을 가르치는 부뢰傅雷는 확실히 엄격한 아버지의 전형입니다. 그러나 그 엄격함은 아버지 스스로 보이는 본받을만한 생활태도(君子自彊不息 : 군자는 스스로 힘쓰며 쉬지 않음) 때문에 더 호감이 가는 것입니다.

  편지글 뒤에는 부뢰傅雷와 주매복 부부의 유서가 덧붙여져 있습니다. 이 부부는 문화대혁명文化大革命시절 장개석蔣介石의 사진을 한 장 갖고 있었다는 이유로 누명을 쓰게 되자, 구차한 과정 없이 결백을 증명하기 위해 유서를 남기고 자살했습니다.

  그 꼿꼿한 지조志操야말로 아들에게 보낸 편지글 속에서도 시퍼렇게 빛을 발하던 부분이었을 것입니다. 오늘날의 아버지는 부뢰傅雷처럼 엄격히 아들을 가르쳐서는 안 될 것이고 아들들 역시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할 것이지만, 그래도 이 아버지의 부성父性과 가르침은 한번 귀담아 들을 만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 책에 나오는 아버지가 아들에게 보내는 편지의 한 부분을 소개하자면...

  1월 19일 저녁

  어젯밤 잠자리에서 또 너의 어린 시절을 돌이켜 보았다. 가여운 내 아들아, 너의 어린 시절은 어쩌면 그렇게 나와 비슷한지, 나도 네가 어릴 때부터 겪었던 좌절이 오늘의 너에게 작은 도움이라도 됐을 것이라 믿고 있단다.

  하지만 아버지로서 나는 중대한 잘못을 너무 많이 했다. 일생 동안 친구와 사회에 대해서는 별로 잘못한 일이 없지만, 집에서는 너와 네 어머니에게 양심에 어긋나는 일을 많이 하였다. 뒤늦게나마 1년 전부터 내 잘못을 깨닫고는 늘 괴로웠는데, 특히 요 며칠 동안은 그 생각이 악몽처럼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마흔 다섯이 되어서야 비로소 부성이 무엇인지 깨닫는구나!

  오늘도 종일 기력을 완전히 회복하지 못했다. 인생의 어려움은 끝이 없는 것이다. 그 어려움이 거의 끝나가고 있을 땐 세상을 떠나야 하는 것이다. 지난 이틀 동안, 왜 이렇게 마음의 동요가 심했는지 생각해 보았다. 그것은 <지금처럼 너를 깊이 사랑한 적이 없었는데, 이처럼 사랑이 아주 깊을 때 이별을 하게 되는구나!>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이런 어려움은 나나 네 어머니 모두 처음 겪는 것이다.

  네 어머니의 사랑은 보통 어머니의 사랑을 뛰어넘는 것이고, 어머니는 너를 위해 정말 많은 심혈을 기울였다는 것을 잊지 말아라. 또 너 때문에 깊고 고통스러운 원망(물론 그것은 내 잘못이다)을 감내해야 했다는 것도 잊어선 안 된다. 하물며 정원사도 피와 눈물로 키운 꽃과 과일을 다른 사람들을 위해 세상으로 내보낼 때 그것들과 헤어지는 것을 아쉬워하는데, 우리가 너를 떠나 보내는 일이 어찌 쉬울 수 있겠느냐?

  네 어린 시절은, 아버지 노릇도 제대로 할 줄 모르고 예술에 대해서도 아는 것 없던 장년 시절의 나 때문에 고통스럽게 지나갔다. 다행히 네 천성이 강인하고 낙천적이어서 너는 어떤 어려움도 잘 견뎌내었다. 그래서 내 죄과를 조금이나마 덜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결과와 당시의 사실은 완전히 별개의 것이다. 과거는 묻어버릴 수 있지만 잘못은 끝까지 남는 법이란다. 아들아, 내 아들아! 너를 어떻게 보듬어주어야 나의 이 회한悔恨과 뜨거운 사랑을 보여줄 수 있을지 모르겠구나!

  무엇보다도 이 책에서 가장 마음을 아프게 하는 구절은...

     "힘을 다해 나의 경험과 냉철한 이성을 너희들에게 바쳐
     너희들의 충실한 지팡이가 되고 싶다.
     어느 날, 너희들이 이 지팡이가 귀찮다고 생각할 때 나는 소리 없이 종적을 감추어
     절대 너희들에게 걸림돌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비단非但 부뢰傅雷가 부총傅聰에게만 한 말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습니다.
  아마 '부뢰'와 '주매복'이라는 이름을 빌린 이 땅의 모든 부모님들이 그러할 것입니다.
  자식들에게 모든 것을 주고 싶어하는 그 분들의 마음... 우리는 얼마나 알까요...

  예수회 신부 앤서니 드 멜로(Anthony de Mello)의 <입 큰 개구리의 하품>中에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1946년 여름, 기근이 돌 거라는 소문이
     남아프리카 대륙을 휩쓸었다.
     사실 곡식들은 잘 자라고 있었고,
     날씨도 추수하기에 정말 좋은 기후였다.
     그런데 소문을 듣고 놀란 2만 명이나 되는 소작농들이
     농토를 버리고 도시로 도망가 버렸다.
     결과적으로 농사를 망치게 되었고
     수 천명의 사람들이 기아에 시달리게 되었다.
     기근이 든다는 소문은 사실이 되고 말았다.

  근거의 유무에 상관없이 사람들이 만들어 내는 소문이란 언젠가 사실로 다가오는 위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모두 입 조심, 글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낮에 갑작스레 내린 비로 피해보는 이들이 없었으면 하는 생각도 듭니다.
  그럼... 춤을 추고 싶을 정도로 신나는 일이 있는 저녁 되세요.

     가게 주인이 우연히 점원이 손님에게 하는 얘기를 듣게 되었다.
     '아닙니다, 사모님. 그 물건은 지난달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당분간은 들어오지 않을 겁니다.'
     깜짝 놀란 주인이 막 문을 나서는 손님에게 다가가서 말했다.
     '죄송합니다, 사모님. 그 물건은 곧 준비가 됩니다. 실은 약 이주 전에 주문을 했거든요.'
     손님이 간 후 주인은 점원을 불러서 야단을 쳤다.
     '절대로, 절대로 손님에게 물건이 없다고 해서는 안 되네.
     만일 물건이 없으면 곧바로 주문을 하겠으니 조금만 기다리시라고 해야 하네.
     그런데 그 손님이 원하는 물건이 무엇이었나?'
     점원이 말했다.
     '내리는 비를 사고 싶대요.'
     상대방이 하고 있는 말을 우리가 완전히 이해했다고 섣불리 가정해서는 안된다.

     앤서니 드 멜로(Anthony de Mello)의 <일곱 봉지 속의 지혜>中에서...


댓글 '1'

sunny지우

2002.06.12 22:06:22

삼강오륜이 생각나는군요. 오륜의 유교의 엄격한 가르침으로 부자나 부부에게 사랑의 표현법이 서투른 우리들의 자화상이 아닌가 싶군요. 표현이 자유로운 요즈음의 자녀들에게 갈등의 요인이 되는 것 같기도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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