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그대로 받아 들이라...

조회 수 3118 2002.03.27 23:10:46
토미
     같은 강물 속에 두 번 들어갈 수는 없다. 매달리지 말라.
     이 세상에 지옥이라는 말이 있는 것도
     사람들이 무엇엔가 매달리기 때문이다.
     매달리고 집착하는 것이 곧 지옥이다.
     삶은 항상 흘러가고 있다. 그 흐름을 받아들여라.

  'B.S. 라즈니쉬'의 <숨은 조화>中에 나오는 말입니다.
  이 어록語錄은 자칫 극도의 '순응주의'와 '패배주의'를 조장하는 말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습니다. 인간은 때론 강물에 역류하는 도전과 모험도 필요하다고 믿는 사람들에겐 특히 거부감이 생길 수도 있는 말입니다. 개척도, 개혁도, 재창조도 불가능하게 만드는 말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흐름을 받아들인다'는 말語속에는 우주의 본질, 우주의 섭리와도 같은 깊은 철학적 의미가 담겨있다고 생각합니다. 삶의 흐름을 좋게 받아들이는 것도 결코 손쉬운 일이 아닙니다. 인생은 흐르는 강물과도 같습니다. 강을 잘 타려면 그 흐름이 가는 대로 몸을 맡겨야만 합니다. 바위가 나오면 바위를 피하고 폭포가 나오면 떨어지기도 하면서 가는 것입니다. 물살을 읽지 못하고 거스르는 것보다 물살에 몸을 맡기고 나타나는 장애물을 피해 흘러가는 것이 더 현명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에릭테투스'의 <삶의 기술>중에서 보면 위의 글과 비슷한 내용이 나옵니다.

     자신이 원하는 대로 일이 되어 가기를 기대하지 말라.
     그것을 요구하지 말라.
     일들이 일어나는 대로 받아 들이라. 그대로 흘러가라.
     나쁜 것은 나쁜 것대로 오게 하고 좋은 것은 좋은 것대로 가게 하라.
     그때 그대의 삶은 순조롭고 마음은 평화롭다.

  삶을 살아가는 데도 기술이 필요합니다. 그 첫 번째는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물론 쉽지 않은 일입니다. 왜냐하면 누구나 자기가 바라는 바가 있고, 그 바라는 바대로 밀고 나가려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자기 생각에 집착하지 않고 나쁜 것은 나쁜 것 그대로, 좋은 것은 좋은 것 그대로 받아들이는 태도를 갖게 되면 '순조로움'과 '마음의 평화'를 얻게 됩니다.

  요즘은 '유진'이 없는... 비어있는 자리를 새삼 느끼고 있습니다.

     사람은 없어 봐야 그 빈자리를 안다.
     있던 가구를 치울 때면
     오히려 그 자리가 신선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사람은 다르다.
     그 사람의 빈자리가 드러나면서 다가오는 서글픔과 불편함....
     그것은 때론 그리움으로까지 이어지지 않던가.

  '한수산의 <거리의 악사> 중에서 나오는 글입니다.
  사람의 가치는 그 사람이 남긴 빈자리의 넓이와 깊이로 가늠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런 점에서 이별의 경험도 값이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 사람의 '빈자리'를 알게 될 때 진정한 사랑을 느끼게 되는 것처럼 말입니다.

  예전에 일본 아쿠타가와 상을 수상한 '유미리'씨가 인터뷰를 하면서 한 말이 생각납니다.

  중학교 때 자살을 시도하고 난 후 산 사람에게도 죽은 사람에게도 송구스런 마음이었어요. 나는 어려서 가족도 잃고 학력도 중졸밖에 되지 않아(실제로는 요코하마 공립고등학교 1학년 때 퇴학당했다) '내겐 아무것도 없다'는 의식이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확실히 내겐 아무것도 없어요. 단 하나 가진 게 있다면 내 자신에 대해 알고자 하는 욕구뿐이죠. 남보다 두 배는 강한 이 욕구가 내가 사는 원동력이며 내가 글쓰기에 매달리는 데 큰 도움을 주는 힘이에요

  '유미리'가 글을 쓰게 하는 힘... '내겐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이 들 때, 사람은 절망하게 됩니다. 심한 경우에는 '유미리'처럼 자살까지도 시도하게 됩니다. 그러나 한 번만 뒤집어 보면 바로 그때가 새로 시작할 수 있는 출발점이기도 합니다. 더 이상 잃을 것이 없고, 무서울 것도 없기 때문입니다.

  요즈음 제가 '유미리'가 쓴 <루즈(ROUGE), ル-ジュ>를 읽고 있는데, 참 재미있습니다.
  사람마다 글 읽는 취향이 달라 '유미리'에 대해 좋지 않은 느낌을 가지고 계신 분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이 작가의 소설에는... 가벼움의 갈피에 날카롭게 숨은 사랑 잠언이 있습니다.
  이 작품에서도 예외는 아닙니다.
  '현대 사회에서 해피엔드가 허락되는 연애란 없다'라든가 '사랑이란 스토리다. …스토리가 다하면 두 사람의 만남도 끝이다'와 같은 표현 말입니다.

  집에 오는 길에 옆 좌석에 앉은 연인들이 영화 '편지'에 대해 얘기하는 것을 들으며 생각나는 시詩가 있습니다.
  이 詩의 한 구절을 적으며... 전 읽다가 만 책冊을 읽어야겠습니다.
  그럼... 마음의 평화를 찾는 밤 되세요.

     당신이 나에게 바람 부는 강변을
     보여주면은 나는 거기에서 얼마든지
     쓰러지는 갈대의 자세를 보여주겠습니다.

  이 구절은 <기도祈禱>라는 시의 일부분입니다. 영화 <편지>를 보신 분들은 황동규 시인과 <三南에 내리는 눈>에 대해 기억하실 것입니다. 물론 저도 제 지나간 삶 속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영화입니다.
  제가 기억하는 그 사람과 본 유일한 영화이니까 말입니다.
  가끔은 '삼남에 내리는 눈'을 맞는 상상을 해 봅니다.
  그러면 제 기억 속에 없었던 일로 생각하기에는 너무나 있었던 일로 아직도 남아있는 그 사람에게 "당신이 나에게 바람 부는 강변을 보여주시면, 나는 당신 앞에 쓰러지는 갈대가 되겠습니다"와 같은 '사랑의 기도'를 드릴 거 같아서요.


댓글 '2'

sunny지우

2002.03.28 01:19:48

토미님 늦은 밤 님의글으 읽으면서 외모는 어떻게 생기 셨을까하고 상상의 나래를 폄니다. 님에 대해서 느낀 것을 함부로 말할수 없지만 제 직업상 글쓴분의 심리를 통찰해 볼때가 많습니다. 마음의 터널을 빨리 빠져 나오길 바라지만 님의 말처럼 삶을 그대로 받아 드릴때 가장 빠른 지름길인듯 싶습니다. 글 잘 읽었습니다.

세실

2002.03.28 08:52:04

삶의 흐름에 자신을 맡기고...때로 지나온 자취가 그립기도 하겠지만 지금 이 순간에 순응하는 것 또한 중요하겠죠.바람이 불면 갈대는 쓰러질지언정 꺾어지지는 않는데.... 토미님 잊으려 애쓰지말아요. 어느 순간 문득 그 기억들이 바래버린걸 느낄 수 있을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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