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하늘나라에 곧 지상으로 내려가게 될 아기가 있었대요. 그 아기는 하느님께 물었죠.
  "하느님께서 절 내일 지상으로 보내실 거라는 얘기를 들었어요. 그렇게 작고 무능력한 아기로 태어나서 저보고 어떻게 살라고 그러시는 거예요?"

  "내 그래서 너를 위한 천사를 한 명 준비해 두었지. 그 천사가 널 돌봐줄 거다."
  "하지만 여기서 전 노래하고 웃으며 행복하게 지냈는걸요."
  "지상에서는 네 천사가 널 위해 노래하고 미소지어 줄 테니까 넌 천사의 사랑 속에서 행복함을 느끼게 될 거란다."

  "하지만 전 사람들의 말을 모르는데 그들이 하는 말을 어떻게 알아들을 수 있죠?"
  "네 천사가 세상에서 가장 감미롭고 아름다운 말로 너한테 얘기해 줄 거란다. 그리고 인내심과 사랑으로 네게 말하는 걸 가르쳐 줄 거야."
  "그렇다고 해도 제가 하느님께 말하고 싶을 땐 어떡해요?"

  "그럼 네 천사가 네 손을 잡고 어떻게 기도하면 되는지 알려줄걸."
  "지상에는 나쁜 사람도 많다던데 그 사람들로부터 저 자신을 어떻게 보호하란 말인가요?"
  "네 천사가 목숨을 걸고서라도 널 보호해 줄 꺼야."

  "하지만 하느님을 보지 못하게 되면 너무 슬플 텐데요."
  "네 천사가 나에 대해 얘기해주고, 나한테 다시 돌아올 수 있는 방법을 알려줄 거란다. 난 늘 네 곁에 있을 거지만 말야."

  그 순간 하늘이 평온해지면서 벌써 지상에서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어요.

  "하느님, 제가 지금 떠나야 한다면 제 천사 이름이라도 좀 알려주시겠어요?"
  "네 천사를 넌 <엄마>라고 부르게 될 거란다."

  어제가 저의 '천사' 되시는 분의 생신이었거든요.
  때늦은 선물을 준비하려고 백화점 순례를 하였지만... 마땅한 선물을 고를 수 없어 결국 현금으로 날이 밝으면 드릴까 생각중입니다.
  어머님의 생신을 잊어버린 것은 아니였는데, 이것저것 신경을 쓰다보니 불효不孝를 저지르게 되었네요.
  나이를 드시면 하찮은 것에도 금방 노여워진다는데... 참 생신을 챙겨드리지 못한 것은 하찮은 것이 아니죠. 우리는 흔히 그런 실수를 반복합니다. 남의 생일은 창 챙기면서 정작 챙겨야 할 내 가족은 좀 무심無心하게 지나가는 실수 말입니다.
  님들도 조심하세요.

  요 몇 일은 이해인 수녀님의 '말을 위한 기도'가 생각나는 날들이었습니다.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나
     수 없이 뿌려 놓은 말의 씨들이
     어디서 어떻게 열매를 맺었을까
     조용히 헤아려 볼 때가 있습니다.

     무심코 뿌린 말의 씨라도
     그 어디선가 뿌리를 내렸을지 모른다고
     생각하면 왠지 두렵습니다.
     더러는 허공으로 사라지고
     더러는 다른 이의 가슴속에서
     좋은 열매를 또는 언짢은 열매를 맺기도 했을
     언어의 나무.

     주여!

     내가 지닌 언어의 나무에도
     멀고 가까운 이웃들이 주고 간
     크고 작은 말의 열매들이
     주렁주렁 달려 있습니다.
     둥근 것, 모난 것
     밝은 것, 어두운 것
     향기로운 것, 반짝이는 것
     그 주인의 얼굴은 잊었어도
     말은 죽지 않고 살아서
     나와 함께 머뭅니다.
     살아있는 동안 내가 한 말은
     참 많은 것도 같고 적은 것도 같고
     그러나 말이 없이는
     단 하루도 살 수 없는 세상살이.

     매일 매일 돌처럼 차고 단단한 결심을 해도
     슬기로운 말의 주인이 되기는
     얼마나 어려운지.

     날마다 내가 말을 하고 살도록
     허락하신 주여
     하나의 말을 잘 탄생시키기 위하여
     먼저 잘 침묵하는 지혜를 깨우치게 하소서.

  이해인 수녀님의 시를 한 편 더 적어볼까 합니다.

     나는 문득
     외딴 마을의
     빈집이 되고 싶다

     누군가 이사오길 기다리며
     오랫동안 향기를 묵혀둔
     쓸쓸하지만 즐거운 빈집

     깔끔하고 단정해도
     까다롭지 않아 넉넉하고
     하늘과 별이 잘 보이는
     한 채의 빈집.

  예전에 이해인 수녀님이 '비어있다'는 말을 가지고 인터뷰하신 글을 본 적이 있습니다.
  물론 수녀님이 인터뷰하신 글은 스크랩scrap해서 제 노트에 끼어 놓았구요.

  "비어있지 않으면 담을 수 없지요. 기다리고 수용하는 마음이예요. 이타적 사랑의 교육이 몸에 밴 탓도 있을 테고. 여행자가 짐을 많이 갖고 가면 목적지에 도달할 수가 없어요. 어디든 달려갈 수 있는 가벼움. 새처럼. 김현승 시인이 '나는 항상 내가 무겁다'고 한 것도 공감돼요. 수도자는 모든 것을 버렸지만, 모든 것을 안아야 되니까요.

  맞는 말씀이신 거 같습니다. 아니 맞습니다.
  인간의 마음이 항아리와 같다면 얼마나 세상이 아름다워질까...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아직 보지 못한 戀歌 20부에서 '유진'이 프랑스로 떠난다는 이야기를 님들의 글을 보고 알았습니다.
  전 프랑스로 혼자 떠날 때의 '유진'의 마음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오랜 시간 사랑하는 사람을 볼 수 없게 되었을 때
     바로 그때 사랑은 제 모습을 드러내게 됩니다
     작은 사랑은 점점 위축되어가고
     큰사랑은 더더욱 깊게 뿌리내리게 되는 것이지요
     촛불은 작은 바람에도 꺼져버리지만
     장작불을 바람이 모질수록
     더 훨훨 타오르는 것처럼

     사랑은 갑자기 섬광처럼 찾아오기보다는
     서서히 아주 서서히 스며드는 것입니다
     가벼운 이슬비가 자신도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어느새 온몸을 흠뻑 적시듯이
     그렇게 스며드는 것입니다
     내 영혼의 빈 들녘을 이슬비로 촉촉이 적셔주다
     어느새 강물이 되어버려 어떤 둑으로도
     그 크기와 깊이를 다 막을 수 없는 그런 스며듦...

     사랑은 하나를 둘로 나누는 것이라고 합니다
     참 이상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모든 하나라는 소유를 둘로 쪼개어 나눌 수 있는 넉넉함...
     그 넉넉함이야 하나도 이상할 게 없지만
     사랑은 하나를 둘로 나누었을 때
     더 작아지는 두 개의 조각이 아니라
     더 커지고야 마는
     두 개의 조각이 된다는 사실입니다

  연가를 보지 않았으니 위의 글이 '유진'의 마음을 표현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만 저라면... 이랬을 거 같습니다.
  그리고 프랑스로 유학을 결정한 것은... '준상'이 '민형'이었을 때의 발자국을 기억해 주려고 간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예전에 민형이 프랑스에 왔을 때의 발자국을 말입니다.

  손이 곱아집니다. 겨울이 지나 봄이 되어 가는데도 말입니다.
  따뜻한 커피 한 잔 마셔야겠습니다.
  그리고 집에 오는 길에 서점에 들러 구입한 책도 좀 봐야겠습니다.

  편안하고 따스한 토요일 밤 되세요.
  그럼... 쉬세요.


댓글 '2'

하얀사랑

2002.03.24 00:27:41

토미님 이 밤에 따뜻한 글 감사합니다... 위에 천사 이야기 정말 좋네요... 토미님두 편안한 밤 만드세요...

흠냐~

2002.03.24 01:32:26

너무 좋은 글이에여..토미님, 하얀사랑님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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