戀歌 19부 다운받다가 적어봅니다...

조회 수 3131 2002.03.19 01:57:11
토미
  戀歌 19부를 다운받는 동안 가볍게 읽으려고 손에 잡은 책을 두 시간동안 꼼짝도 못하고 읽었습니다.
  어릴 때부터 같이 자란 동네 여자친구가 초창기부터 일해 온 '이레'출판사에서 출간出刊한 '마음의 풍경'이라는 수필집인데... 님들에게도 추천을 하고 싶습니다.
  특히 저처럼 戀歌가 끝난 다음에 다가올 후유증에 두려워하고 있는 분들에게 말입니다.
  분량은 150쪽 분량이니 읽기에 적당하고, 사이사이에 삽화揷畵가 들어가 보는 데 지루하지 않고 무엇보다 이해인, 정호승, 박완서, 안도현, 오정희, 김훈, 김용택... 이름만 들어도 마음에 서정이 불쑥 차오르는 작가들이 모여 길지도 않게 각각 대여섯 페이지 정도의 짧은 글을 썼기 때문에 중간부터 읽어도 부담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 옴니버스 에세이집을 평하자면...

  마음을 담은 글... 전 이 책을 읽고, 눈물이 날 뻔했습니다. 사람들 마음에 이렇게 비슷한 점들이 많이 있다니, 저 혼자 생각하고 느꼈던 것이라고 여겼던 것들을 이 사람들도 같이 느끼고 있구나... 여러 작가들이 쓴 이 책을, 처음에 전 그저 생활에서 느꼈던 것들이겠거니 했습니다. 그저 마음 편히 시간 때우듯이 읽으면 되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하지만, 저의 그런 편견은 첫 페이지를 읽으면서부터 허물어졌습니다. 가볍게 읽을만한 것과는 전혀 다른, 저 자신을 일깨우는 글들이 모여있었습니다. 글쓴이의 따뜻한 시선이 담겨있는 글들, 새 한 마리를 통해서도 사랑을 배우고, 풀꽃 하나를 통해 기쁨을 느낄 수 있는 사람들의 마음씨에 전 제 자신을 되돌아 볼 수 있었습니다.

  여기 있는 글들은 대부분 사람과 자연과의 아름다운 만남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자연을 통해서 제 자신을 가다듬고, 저 스스로를 낮추는 법을 일러주고 있습니다. 제 주변의 모든 것들이 이렇게 소중하고 감사한 존재인지, 글쓴이들은 진정 알고 있는 듯합니다. 한 편篇 한 편篇 넘겨가면서, 우리 사람이 살 때 무엇이 중요한지 지금 우리는 무엇을 잃어버리고 사는지를, 이 글에서는 마음 속 깊이 느꼈던 것들을 따뜻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어떤 강요를 받지 않고도 이렇게 고요한 마음의 풍경속에 젖어들어 우리도 그렇게 살아야함을 알게 해줍니다. 마음을 들여다보는 일들.. 그것만큼 자기 자신을, 그리고 이 세상을 아름답게 하는 게 있을까... 하는 생각도 가지고 하고 말입니다.

  이 책을 읽고 나니, 전 제 마음이 좀 더 편해짐을 느낍니다. 제가 살고 있는 곳에 가까이 산이 보이고, 밭을 볼 수 있다는 것, 벼가 자라는 것을 볼 수 있고, 산새들이 노래하는 것을 들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저의 마음이 외로울 때, 아마 이 글은 저한테 너 자신을 더 사랑하라고 말해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 책의 본문을 약간 소개하자면...

  본문 72page ∼ 73page '선물' 중에서

  나는 내 영혼에게 조용히 내가 마련한 선물 꾸러미를 펼쳐 보였다. 나와 함께 네팔에 가는 거야. 그곳에 히말라야 산맥이 있지. 눈 덮인 세계의 지붕, 만년설이 지상의 가장 푸른 공기와 만나는 곳이지. 네게 그 설산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 한 번도 훼손되지 않는 눈부신 햇살들이 그곳 산 정상에 쏟아지는 모습을 네게 선물하고 싶어.

  내 영혼이 내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나는 내 영혼이 나직하게 흐느끼는 소리를 들었다.

  비행기가 이륙을 시작했다. 나는 눈을 떴다. 옆자리에 앉은 여자가 눈인사를 했다. 하이. 짧게 답례했을 때 여자의 말이 이어졌다. It's christmas music. 여자는 두 어깨를 움찔해 보였다. 기내에 흐르는 음악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나는 그녀에게 물었다. 클래식인가 아니면 팝? 거두절미의 나의 영어에 그녀가 웃었다. 세월의 흔적이 적당히 밴 그 웃음이 따뜻했다. 클래식. 그녀의 대답이 이어졌다. 차이코프스키의 호두까기인형이지요. 나는 조금 부끄러워졌다.

  그 곡은 나도 크리스마스 이브 같은 때 몇 번 들어본 적이 있는 곡이었다. 곡 중 '꽃의 왈츠'를 제목으로 시를 쓴 적도 있지 않았던가. 크리스마스가 진즉 지났는데... 여자는 다시 어깨를 움찔해 보였다. 호프만의 동화를 바탕으로 한 그 음악은 크리스마스 이브가 이야기의 배경이었다. 여자의 얘긴즉 때가 지난 음악이 흐르고 있다는 것이었다.

  내가 얘기했다. 크리스마스는 눈에 덮인 계절이다. 지금 우리가 가려는 네팔은 눈 덮인 히말라야 산맥 속에 자리한 나라다. 그곳에선 일년 내내 눈 덮인 하얀 산들을 볼 수 있다. 그곳은 일년 내내 크리스마스 시즌이 펼쳐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 이 음악은 우리 같은 여행자에게 썩 어울리는 음악이다. 결코 철늦은 음악이 아니다.

  내가 천천히 얘기를 마쳤을 때 여자가 내게 물었다. 어느 나라에서 왔지요? 한국. 그곳에서 무슨 일을 하나요? 시를 써요. 원더풀. 여자는 손뼉을 쳤다. 캘리포니아에서 왔어요. 여자의 영어는 쉽고 따뜻했다.

  시집을 낸 적이 있나요? 일곱 권쯤. 여행기며 동화책을 더하면 열 권이 넘어요. 영어로 번역된 책도 있나요? 아마도 십 년 후쯤엔 분명히... 그녀와 나는 큰소리로 함께 웃었다. 그렇게 해서 나와 그녀는 싱가포르발發 카트만두행行 비행기 안에서 친구가 되었다.

  그녀와 나의 여행 목적은 같았다. 안나푸르나 트래킹. 그녀는 지금부터 십이 년 전 히말라야 트래킹을 한 적이 있노라고 했다. 지금은 세상에 없는 남편과 함께 한 트래킹이었다. 지상에 존재하지 않는 한 그리움. 그 그리움을 떠올리며 그녀는 지금 홀로 히말라야 트래킹을 떠나는 것이다.

  아름다운 여행이군요. 모든 그리운 것들은 우리가 이 지상을 살아가는 동안 따뜻한 힘이 되지요. 여자의 눈시울이 조금 붉어졌다.

  본문 18 page ∼ 19 page '눈을 감고 보는 길' 중에서

  입원 전날 밤 나는 가족들을 모아 놓고서 당부하였습니다. 당분간 병원에 나타나지 말아 달라고. 왜냐하면 함께 슬퍼만 하다가는 견디어낼 내 힘이 너무 일찍 소진되어 버릴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입원해서는 입원실 문에 '면회 사절'이라는 패찰牌札을 내걸었으나 다짜고짜 밀고 들어오는 사람들은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나는 친구의 도움을 받아 다음과 같은 고지문을 만들기도 하였지요.

  "바쁘신 중에도 이렇게 찾아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오시는 분들은 갑자기 들은 소식이어서 궁금하여 물어보는 것이겠지만, 답하는 저로서는 매번 같은 말을 반복하게 되어 피곤한 것 또한 사실입니다. 이것은 예가 아니겠습니다만 서로가 번거로움을 피하기 위해서 그동안의 경과를 적었으니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평소 B형 간염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3년 전부터 정기적으로 병원에 들러서 검사를 받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금년 11월 정기검진을 앞두고 오른쪽 하복부에 간혹 통증이 왔습니다만 대수롭지 않게 여겼습니다.

  허나 체중이 짧은 기간에 1킬로그램 또 1킬로그램 줄어서 이상하게 여기고 병원에 가 초음파 검사와 CT촬영을 해본 결과 간암이라는 판정이 나왔습니다.

  부랴부랴 입원을 해서 수술을 할 것인지, 다른 방법으로 치료를 할 것인지를 결정하기 위해 지금 각종 검사를 하고 있습니다. 12월부터는 검사 결과에 따른 치료가 본격화될 것이므로 그때는 정말 오시지 않는 것이 저를 도와주시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회복기에 들어가면 스스럼없이 만나 뵙도록 하겠습니다. 거듭 감사드리고 앞으로의 저의 투병을 위해 제 고향 바다와 같은 푸른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이 글은 친구가 대신 써서 본인이 교정을 본 것입니다.)"

  본문의 일부를 소개할 때 쓴 두 편篇의 수필은... '선물'은 시인 곽재구님, '눈을 감고 보는 길'은 작년 1월에 더 좋은 세상으로 가신 동화작가 정채봉님의 글입니다.
  기회가 되면 정채봉님의 글과 이야기를 써 보고 싶습니다.
  저... 이분의 글을 참 좋아하거든요.

    아주 작은 죄도
    지을 수 없을 것 같은
    푸른 가을 날

    가장 아름다운 그림물감을
    내 마음에 풀어
    제목 없는 그림을
    많이도 그려본다

  이해인님의 '추억일기' 중에서 적어보았습니다.
  다른 님들은 연가 19부를 보고서 동영상을 올리고, 느낌을 적지만... 전 아직 볼 엄두가 나지 않습니다.
  이해인님의 시어詩語처럼 아직까지 가장 아름다운 물감을 제 마음에 풀어 '민형'과 '유진'과 '상혁'을 그릴 수 없기 때문인가 봅니다.

  이제 좀 자야 하겠습니다.
  졸리거든요.
  아침부터 기분좋은 일이 있는 하루였으면 합니다. 저나 여기에 오시는 님 모두에게 말입니다.
  그럼... 우리의 하루가 감동이 있는 하루가 되기를 바라며


댓글 '3'

세실

2002.03.19 07:29:51

<마음의 풍경> 기억해두었다 읽어야겠군요. 전 박완서님 글이라면 뭐든지 좋아해요. 토미님도 오늘 기분 좋은 날이 되기를^^

정아^^

2002.03.19 09:37:37

좋은글 감사함니다^^ 좋은하루되세요~

흠냐~

2002.03.19 10:31:54

저두 꼭 "마음의풍경"..읽어봐야겠어요..아침에 여기 들어와 토미님의 좋은글 읽으니 기분이 좋아지네요..감솨..아....히말라야에 가고싶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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