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일생에 몇 명이나 될까..

조회 수 3122 2004.12.15 20:22:52
토미
     깊은 마음속 인정의 물을
     서로 나누어 마신 이들이 내 일생에 몇 명이나 될까?
     서로 따뜻한 등불을 비추어 준 이들이 또 몇이 있을까?
     그 친분은 입으로 뱉는 고급 말로도
     안 되고, 아첨으로도 안 되며 돈으로도 안 된다.
     겉치레로 사람 만나는 걸 나는 지극히 꺼린다.
     흥미 본위로 만나는 것은 더욱 질색이다.

  닥종이 인형작가로 유명한 ‘김 영희’의 수필집 <뮌헨의 노란 민들레>中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요즘 같은 연말을 맞이하게 되면 수첩에 적힌 많은 이름들, 책상 주변의 수많은 명함과 선물 등 여러 흔적들을 보면서 그동안 참 많은 사람을 만나고 살았구나, 새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그러면서, 이 가운데 정작 깊은 속마음을 나누며 사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도 생각해 보게 됩니다.
  좋을 때보다 어렵고 힘들 때, 잘 나갈 때보다 춥고 외롭고 아플 때, 바로 그 때 손을 건네며 마음을 나눌 사람이 얼마나 될까...그 순간, 몇 사람의 얼굴이 섬광처럼 번개처럼 머리에 떠오른다면 그 사람은... 정말 올 한 해 사람농사를 잘 지은 사람일 것입니다.

  버스 노선이 바뀐 뒤로 새로 생긴 버릇이 있습니다.
  그래봤자 아직 한 달도 안 된 버릇이지만 말입니다.
  서울 시장의 선심인지는 모르겠지만 사무실이 있는 광화문까지 한 번에 가는 노선버스가 생겨 나가고 들어오는 길에 짧은 쪽수의 책을 매일 한 권씩 읽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는 내가 아는 사람 중
     가장 온전한 정신을 가지고 있으며, 가장 변덕이 적은 사람일 것이다.
     어제나 오늘이나 그는 한결같으며 내일도 그러할 것이다.
     두 사람이 숲을 거닐면서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속세를
     완전히 벗어난 기분이 들 때가 많았다.
     왜냐하면 그는 어떤 제도에도 구속받지 않는 자유인이었기 때문이다.

  헨리 데이빗 소로우(Henry David Thoreau)의 <월든(Walden)>中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온전한 정신일 때 사람은 자유를 얻는다고 생각이 됩니다.
  온전한 정신은 온전한 생각에서 나온다고 생각됩니다.
  생각이 온전하면 중심을 잡아야 할 때 중심잡고, 분별해야 할 때 분별하고, 섞여야 할 때 잘 섞이기 때문입니다.
  자유는 방종이나 변덕이 아니며, 자기 생각의 울타리를 더 크게, 그리고 온전하게 넓혀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책을 읽어보시거나 제목을 들어보신 분은 꽤 되리라고 생각이 되어집니다.
  여기에 오시는 분들 중에는 이 책이 번역되어 출간되던 90년대 초에 사회생활을 시작하셨거나, 아니면 대학 논술고사 문제로 출제되던 시기에 시험을 치렀던 분들이 꽤 될 테니까요.
  이 책中에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자기의 또래들과 보조를 맞추지 않는다면,
     그것은 아마 그가 그들과는 다른 고수의 북소리를 듣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 사람으로 하여금 자신이 듣는 음악에 맞추어 걸어가도록 내버려 두라.
     그 북소리의 음률이 어떠하든, 또 그 소리가 얼마나 먼 곳에서 들리든 말이다.
     그가 꼭 사과나무나 떡갈나무와 같은 속도로 성숙해야 한다는 법칙은 없다.
     그가 남과 보조를 맞추기 위해 자신의 봄을 여름으로 바꾸어야 한다는 말인가?

  이 구절을 읽고 있으면 또 생각나는 한 권의 책이 있습니다.
  언젠가 제가 한 번 소개한 적이 있는 피에르 쌍소(Pierre Sansot)의 <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원제: du Bon Usage de la Lenteur>입니다.

  느림이라는 태도는 빠른 박자에 적응할 수 있는 능력이 없음을 의미하지 않는다. 느림이란 시간을 급하게 다루지 않고, 시간의 재촉에 떠밀려가지 않겠다는 단호한 결심에서 나오는 것이며, 또한 삶의 길을 가는 동안 나 자신을 잊어버리지 않을 수 있는 능력과 세상을 받아들일 수 있는 능력을 키우겠다는 확고한 의미에서 비롯하는 것이다.---page.13

  가느다란 보슬비는 시골 소도시를 더욱 다소곳하게 만들어 준다. 그래서 평소의 귀엽고 발랄한 모습을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건물 벽에, 아이들 이마에, 비옷의 모자 위에 섬세한 진주 방울들이 맺히고, 모든 것이 친밀감과 행복감 속으로 모여든다. 집집마다 일치감치 덧창을 닫고, 상점과 시청의 커튼도 내린다. 그때쯤이면 소도시의 사람들은 꿈을 꾸기 시작한다. 안락의자에 자리를 잡은 그들은 조용히 미래를 접고서, 어쩌면 일어날 수도 있는 일에 대해 꿈을 꾸는 것이다.---page.101

  단도직입적으로 말해, 느린 사람들은 평판이 좋지 못하다. 흔히 느린 사람들은 고집이 세다는 소리를 들으며, 매사에 동작이 굼뜬데다가 서투르다는 말도 듣는다. 심지어 매우 힘들고 까다로운 작업을 하고 있을 때조차도 워낙 행동이 느려서 그렇다는 소리를 들어야만 한다. 게다가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들이 좀 둔하다고 생각한다. 그들이 여유 있는 동작으로 걸어가고 있을 때도 우아함이라고 보기보다는 운동신경이 느리기 때문이라고 보는 것이다. 또 그들은 일을 할 때도 온 정신을 집중하지 않고 대강대강 시간만 때운다는 의심을 받아야 한다.

  현대인들은 머리 회전이나 동작이 느린 사람보다는 민첩하고 빠릿빠릿한 사람을 더 좋아한다. 후자들은 잽싼 손길로 식탁을 정리하면서도, 나지막하게 부탁하는 소리까지 금방 알아듣고는 재빠른 동작으로 상대방의 요구에 응해 준다. 뿐만 아니다. 속셈에서도 그들을 당할 자가 없다. 그들의 신속한 동작, 재빠른 반응, 예리한 시선, 날씬한 외모, 선명한 윤곽 속에는 반짝이는 생동감이 넘쳐흐른다. 한 마디로 그들은 활발하고 재기발랄하다. ‘그런 사람들에 대해서는 걱정할 게 없어요. 어쩌다 곤경에 빠졌다 해도 금방 헤쳐 나올 수 있는 사람들이니까요.’

  그러나 나는 내 길을 선택하기로 했다. 바로 느림이 존재하는 영역이다. 나는 굽이굽이 돌아가며 천천히 흐르는 로 강의 한가로움에 말할 수 없는 애정을 느낀다. 그리고 거의 여름이 끝나갈 무렵, 마지막 풍요로움을 자랑하는 끝물의 과일 위에서 있는 대로 시간을 끌다가 마침내 슬그머니 사라져 버리는 9월의 햇살을 몹시 사랑한다. 또한 시간의 흐름에 따라, 얼굴에 고귀하고 선한 삶의 흔적을 조금씩 그려나는 사람들을 보며 감동에 젖는다.

  며칠 전 신문에서 <소주 한 병에 1,500만 원>이라는 기사를 보았습니다.
  그 내용을 보니 소주 1병(7잔)을 마시고 신호위반으로 4주의 인사사고를 내면(혈중 알코올농도 0.15%) 종합보험에 가입했어도 대략 1,500만 원 이상의 손실을 감수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최고 200만~300만 원 벌금, 변호사 선임 비용 500만 원, 운전면허 재취득 비용 150만 원, 인사사고 면책 금액 200만 원, 자차의 경우 수리비 평균 100만 원(음주운전 보험처리 제외), 피해자형사합의금 280만 원(1주 70만 원), 보험할증료, 기타 비용 200만 원 등이라는 것입니다.
  요즘 같이 망년회가 시작되는 시기에 모두 조심하셨으면 합니다.
  혹여 가족中에 불미스러운 일이 생기지 않도록 말입니다.
  그럼, 모두 편한 저녁 맞이하시기를...

댓글 '2'

2004.12.15 23:15:15

예전부터 토미님은 어떤 분일까 참으로 궁금했답니다.
너무나 해박한 지식과 따뜻한 마음을 가지신 분.......그 한곁에 외로움도 묻어있는 님의 모습 참으로 궁금했답니다.
따뜻한 글 잘 읽었습니다.

달맞이꽃

2004.12.16 07:18:10

깊은 마음속 인정의 물을
서로 나누어 마신 이들이 내 일생에 몇 명이나 될까?
서로 따뜻한 등불을 비추어 준 이들이 또 몇이 있을까?
그 친분은 입으로 뱉는 고급 말로도
안 되고, 아첨으로도 안 되며 돈으로도 안 된다.
겉치레로 사람 만나는 걸 나는 지극히 꺼린다.
흥미 본위로 만나는 것은 더욱 질색이다
너무 마음에 닿는 글이라 몇번을 몇번을 되뇌이며 읽고 읽는 중입니다 ..후후~
안녕하세요 ..토미님 ..오랜만입니다
너무 오랜만에 오셔서 인사가 길어야 할것 같은 생각이 드는군요 ^)^
잘 계셨습니까?
정말 너무 소원하셨습니다..레..후후~
토미님에 글 정말 많이 기다렸습니다
님에 글속에는 따뜻한 인간애와 지혜가 있어 참 좋습니다
과연......우리는 ......
깊은 마음속 인정의 물을 나누어 마신 이들이 나에게는 몇명이나 될까요 ..
그러게요 ..몇명이나 될까요..나는???
이 물음에 선뜻 대답하는 분들은 세상을 아주 잘 살고 있는 분들일 겁니다.
잘은 모르지만 쉽게 손을 잡는 것 보다 지키고 가는 것이 더 어렵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
그냥 순리대로 살다 보면 애 쓰지 않아도 진실은 밝혀지고 사람답게 사는
지혜도 깨우치겠지요 ..
안그렇습니까 ...후후~
오랜만에 뵙는 토미님도 많이 반가웠구요
좋은 글을 읽으니 좌충우돌하던 마음도 잔잔한 호수가 되었습니다
연말이라 많이 바쁘시겠어요?
님 말씀처럼 올 한해 무탈하게 마무리 잘하고 넘겼으면 좋겠네요..
또.....뵈요 ^ㅎ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sort
33772 최지우 그녀의 실체를 밝힌다 [10] 바다보물 2002-08-05 3099
33771 부산팀 꼭 보셔요 [9] 부산팀 2002-07-12 3099
33770 다섯살 여자아이의 생각![펌]&홍명보vs또띠 [6] 미혜 2002-06-30 3099
33769 아름다운 당신의 생일을 축하합니다~ [2] 흠냐~ 2002-06-11 3099
33768 오랜만입니다..^-^ [2] 지우뿌냐 2002-05-28 3099
33767 아..아무리...삶이 셤의 연속이라쥐만,, [2] 삐노 2002-05-09 3099
33766 드뎌 시험이 끝났당~★ [4] 지우사랑♡ 2002-05-09 3099
33765 스타지우 모둔분께 행운이 있기를... [4] 지우♡ 2002-05-09 3099
33764 왔어요,왔어 제가~^^ 지우수현 2002-04-15 3099
33763 비는 끈임없이 내리고...... [4] 정유진 2002-04-06 3099
33762 날씨가 너무 맑았죠? [7] 바다보물 2002-04-02 3099
33761 오늘 4회 재방을 보면서.... [2] 우리지우 2002-03-28 3099